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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파업] '벼랑끝 대치 25일' 극약처방 불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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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 아시아나항공 노사 협상이 결렬되면서 10일 정부의 긴급조정권이 발동된 가운데 노조 교섭위원들이 농성장인 충북 보은군 신정유스타운에 들어서자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상선 기자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발동한 것은 12년 만이었다. 그만큼 정부로서는 꺼내기 쉽지 않은 카드였다.

그러나 25일째를 맞은 아시아나 조종사노조의 파업을 계속 방관할 경우 국가 경제의 피해는 물론 자칫 항공안전까지 우려된다는 절박한 판단에 따라 이뤄졌다고 한다.

정부는 노사의 자율교섭을 최대한 유도했으나 노사는 결국 타결에 실패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 아래 진행될 노사 교섭이 원만히 타결될지도 미지수다.

◆ 정부, 왜 극약처방 나섰나=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이날 긴급조정권 발동을 발표하면서 "파업이 더 이상 장기화될 경우 국민의 불편뿐만 아니라 생명과 안전이 우려되고 수출입 등 국민경제 차질과 대외신인도 하락이 현실화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국내 항공기 사상 최장 파업(종전 6일)으로 회사 측 피해 규모만 2400억원(여객 1386억원, 화물 1014억원)에 달했다. 여기에 화물 운송.관광 등 관련업계 피해액 1841억원을 합치면 총 피해규모는 4241억원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건교부 관계자는 "유례없는 장기 항공사 파업으로 인한 대외신인도 하락을 감안하면 피해액은 훨씬 크다"고 했다. 일부 전문가는 피해 규모가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또 파업 조종사들을 대신해 회사 측이 투입한 대체 인력의 피로 누적으로 자칫 대형 항공참사가 빚어질 수 있다는 점도 정부로선 무시하기 어려운 대목이었다.

아시아나 조종사노조 측도 정부 관계자에게 "더 이상 사측과 대화가 안 된다. 차라리 긴급조정권이 발동된 뒤 중노위 중재하에 협상하겠다"고 밝혔던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긴급조정권 발동시 연대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압박했음에도 정부가 물러서지 않았던 것은 노동계의 추투(秋鬪)를 앞두고 '노동개혁'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 긴급조정, 어떻게 진행되나=긴급조정권 발동에 따라 노조의 쟁의행위는 30일간 중단되며 중노위의 중재아래 노사가 협상을 벌이게 된다. 조종사 노조 측이 일단 "긴급조정권 발동에 따라 업무복귀 뒤 협상을 하겠다"고 밝혀 당초 우려됐던 공권력 발동과 충돌 사태는 빚어지지 않게 됐다. 하지만 노사 간 협상을 통한 타결 가능성은 현재로선 속단하기 어렵다.

이날 노사는 막판 협상에서 적지 않은 의견접근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핵심 쟁점에는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인사.경영권과 관련된 부분은 사측이 양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만일 15일 이내에 노사 간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중노위가 직접 강제 중재에 나서 조정안을 만들게 되며 노사는 이를 받아야만 한다.

이 경우 정부는 '근로.복지'부문에 대해서는 노사 간 형평성을 최대한 고려하되 '인사.경영권'은 노사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못박고 있어 조종사 노조 측이 요구해 온 인사.경영권 부분참여 조항은 고려 대상에서 배제될 것으로 보인다.

1963년에 도입된 긴급조정권이 발동된 사례는 69년 옛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93년 현대자동차 노조 파업사태 등 두 차례뿐이다.

그러나 49일간 지속됐던 조선공사 파업은 긴급조정 발동 3일 만에, 40일간 파업했던 현대자동차는 하루 만에 각각 노사 간 자율타결로 사태를 매듭지은 바 있다.

◆ 아시아나 내부갈등 치유도 과제=아시아나항공 내부로서는 '노.노 간 갈등' 치유가 급선무다.

우선 300여 명에 불과한 조종사들의 파업 때문에 운항승무원 등 다른 직종까지 포함해 6800여 명에 이르는 전 직원이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았고 일거리가 줄어드는 등 홍역을 치렀다. 사내 게시판에는 '300여 명에 불과한 조종사들이 7000명 동료를 볼모로 잡고 자기들 이익만 챙기려 한다'는 직원들의 항의 글이 매일 수백 건씩 게시됐다.

회사 관계자는 "조종사들이 복귀할 경우 일반 직원과 화합을 도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나 이번 사태로 워낙 감정의 골이 깊어진 터라 당분간 갈등이 치유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장기 파업으로 회사 측이 이미 8월 국제선 운항편수를 16개 노선, 314편이나 줄인 터라 조종사들이 복귀해도 당장 업무가 정상화되기도 어렵다. 회사 측은 일러야 이달 말께 정상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강갑생 기자 <kkskk@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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