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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책 팔아 번 돈, 되돌려주자는 선친 뜻 잇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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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면

김은경 온양민속박물관장이 1978년 10월 박물관 설립부터 현재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1978년 10월 설립된 온양민속박물관(위 사진)은 아산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이다. 과거에는 현충사와 더불어 수학여행의 필수 코스였고, 현재는 아산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그런데 이곳이 개인이 설립한 사립박물관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래서 가끔 입장요금 5000원을 두고 실랑이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박물관이 왜 그렇게 비싼 돈을 받느냐면서 말이다. 그래서 기자는 온양민속박물관 설립자인 계몽사 고(故) 김원대 회장의 딸이자 현재 관장으로 있는 김은경(59·여)씨를 만나 박물관의 설립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박물관을 찾아갔을 때 김 관장은 전시회 준비로 무척이나 분주한 모습이었다. 규모는 여느 박물관 못지않지만 상주 직원이 15명뿐이다 보니 김 관장의 손이 가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첫인사를 나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많이 바쁘게 지내는 것 같다.

 “구정아트센터를 새단장한 이후 박물관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다양한 기획전시를 진행하다 보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다.”

-온양민속박물관이 개인이 설립한 박물관이라 들었다.

 “그렇다. 사립박물관이지만 이름에서조차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는 게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는 자신의 흉상 하나 제작하는 것도 마땅치 않게 여기시는 분이었다. 그 뜻은 알지만 자식으로서 서운한 마음이 들어 얼마 전 박물관 로비에 아버지의 흉상을 작게나마 하나 세웠다.”

-고(故) 김원대 회장이 박물관을 설립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던 이야기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책을 팔아서 돈을 벌었으니, 그 돈을 아이들을 위해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박물관이다. 책만큼 교육적 효과가 큰 것이 박물관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외래 문물이 한꺼번에 유입되면서 우리 전통문화를 촌스러운 것 혹은 세련되지 못한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 보니 전통문화와 우리의 민속이 사라질 위기에 놓이게 됐다. 그래서 아버지는 민속박물관을 세워 우리의 전통을 아이들에게 알리고자 했던 것이다.”

온양민속박물관 안에 있는 구정아트센터 전경.

 -직접 민속품을 수집했나.

 “직접 하신 것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학예사가 전국을 돌며 수집했다. 당시 재력가들 사이에서 도자기나 서화 수집이 유행이었지만 아버지는 소시민들 삶의 애환이 서려 있는 민속품만 고집하셨다.”

-그런데 왜 서울이 아닌 아산에다 민속박물관을 지은 건가.

 “당시 아산 현충사는 수학여행 코스 중 하나였다. 그래서 현충사가 있는 아산에다 민속박물관을 지으면 많은 어린이와 학생들이 다녀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이유다.”

-연고가 없는 곳에 박물관을 설립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을 것 같은데.

 “허가부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외지인이 2만2000평에 달하는 땅에 민속박물관을 짓겠다고 하니 아산시의 입장에서는 의아하기도 했을 것이다. 내가 듣기로는 하나부터 열까지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고 했다. 예산 또한 처음 계획했던 것의 2배 이상 들었다.”

-박물관을 둘러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나무 하나라도 대충 심어 놓은 게 없는 것 같다.

 “제대로 봤다. 아버지는 박물관을 지을 때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동선을 고려해 길을 내는 것은 물론이고 풍수지리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박물관을 관리하면서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

 “그렇다. 어디 하나 아버지의 손길이 스치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내가 아버지의 뜻을 잘 펼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곳이 사립박물관이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이곳이 개인 소유이고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온양민속박물관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계몽문화재단에서 운영하고 있고, 나는 관장을 맡아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이곳을 설립한 분이 내 아버지이고 그렇다 보니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한다는 것이다.”

-어떤 노력 말인가.

“아버지는 이곳을 교육의 장소라 생각했다. 그래서 교육적 측면을 조금 더 보강하고자 한다. 현재도 교육이 이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조금 더 체계적이고 수준 높은 교육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더불어 민속박물관이지만 과거의 기억과 유물만 있는 게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해 나가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그래서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교육의 장으로서 많은 이가 찾게 만들고 싶은 게 나의 꿈이다. 그리고 이는 못다 이룬 아버지의 꿈이기도 하다.”

글=윤현주 객원기자 20040115@hanmail.net, 사진=채원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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