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살 차이, 우리는 룸메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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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셰어링 파트너인 임순빈(85) 할머니와 조성현(23)씨가 서울 노원구 상계동 아파트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조씨는 “우리 할머니는 재치가 넘쳐 누구에게나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서울 상계동의 임순빈(85) 할머니 집 식탁에는 계란프라이와 비엔나 소세지 볶음이 올라왔다. 함께 사는 대학생 조성현(23·서울과학기술대)씨가 중간고사를 보는 날이라 임 할머니가 신경써 차린 아침상이었다. 임 할머니는 “요즘 애들 입맛에 뭐가 맞을까를 고민한 끝에 나온 것”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할머니와 손자 관계가 아니다. 노원구의 ‘어르신-대학생 룸셰어링’을 통해 10개월째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 임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한 이후 방 세 개짜리 아파트에 혼자 살아왔다. 8년 전부터 집은 있지만 벌이는 없었다. 그래도 집은 팔고 싶지 않았다. 비어 있는 방을 세 놓으려 했지만 원룸이 아닌 단칸방이라선지 찾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2년 전 신문에 난 룸셰어링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경기도 화성 출신인 대학생 조씨는 할머니에겐 두번째 학생이다. 첫번째 식구였던 여대생은 지난해 취업해 집을 떠났다.

 지난해부터 노원구가 시작한 룸셰어링 사업이 인기를 끌면서 다른 구로도 확산되고 있다. 서대문구·광진구도 지난 4월부터 각각 이 사업을 시행중이다. 현재 3개구의 룸셰어링 참여자는 64가구 75명으로 늘었다.

 그러자 서울시가 적극 지원에 나섰다. 지난 3일 세대융합형 룸셰어링의 표준을 만들어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노원구만 지원해왔던 도배, 장판과 가구 등 초기 설비를 내년부터 내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하는 모든 자치구도 지원키로 했다. 재계약 기간도 6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한다. 특히 고려대 등 대학이 몰려있는 성북구를 시범사업지구로 지정해 이달중 사업을 시작한다.

 노원구가 올 5월 룸셰어링에 참여했던 노인과 대학생 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의 85%인 34명이 만족한다고 답했다. 노인과 대학생 모두 ‘금전적 여유’를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광진구에서 올해부터 셰어링에 참여한 오화진(56)씨는 “손주 선물을 내 힘으로 살 수 있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우리같은 노인들에겐 20만원은 적지 않은 돈”이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은 “보증금이 없어 좋았다” “자취비로 나갈 돈을 등록금에 보태 빚이 줄었다” 등을 장점으로 꼽았다. 올해부터 서대문구가 운영하는 룸셰어링 프로그램에 참여한 조의영(23·여·연세대학교)씨는 “어르신이 쓰는 생활집기를 추가비용 없이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어르신의 몸에 배인 생활방식과 삶의 지혜를 접하며 인생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가 ‘행복한 동거’를 하는 건 아니다. 답변자 40명 중 4명(노인 2명, 대학생 2명)은 불만족을 표했다. 노원구 복지정책과 정미경 주무관은 "어르신들은 물과 전기 절약 문제를 주된 불만으로 삼았다" 며 “학생들도 어르신들의 지적을 잔소리로 느껴 갈등이 생기곤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노원구가 사업 노하우를 공유키로 했다. 정 주무관은 “처음부터 성향이 잘 맞는 사람들끼리 짝지어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노인과 대학생이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찜’하도록 했다. 학생 4~5명이 단체로 어르신 집 여러 곳을 방문한 뒤 마음에 드는 사람을 구청에 알린다. 이 의견을 반영해 구청이 짝을 지어준뒤 직접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 거주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글=구혜진 기자, 이은정(단국대 중어중문) 인턴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룸셰어링 사업=대학 인근에 혼자 사는 할아버지·할머니가 남는 방을 대학생에게 싼값에 세를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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