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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알뜰한 시댁, 흥청망청 남편 … 대체 왜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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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소비욕, 뇌가 결정한다

(남편 낭비벽이 고민인 워킹맘) 형편 어려운 집에서 자라며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늘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리는 게 꿈이었습니다. 월급이 많지는 않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정부 기관에 다니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건축 관련 개인 사업을 하는 남편 수입은 들쑥날쑥하긴 해도 같은 또래 직장 다니는 친구보다는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돈이 모이지 않습니다. 덜 버는 제가 저금을 더 많이 할 정도로요. 물론 이유가 있죠. 가족끼리 외식을 해도, 해외 여행을 가도 남편은 항상 최고급입니다. 고맙기도 하지만 돈이 아깝기도 합니다. 사실 결혼할 때 알뜰살뜰 근검절약하는 시어머니를 보고 남편과 결혼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돈에 대한 습관은 부모로부터 배운다고 믿었으니까요. 실제로 막내 시동생은 남편보다 박봉인데도 벌써 집을 장만했습니다. 같은 어머니를 뒀는데 대체 왜 이리 다른 걸까요.

(은근히 쓸 땐 쓰는 윤 교수) 현금 50만원이 있습니다. 당장 그 돈을 가질 수도 있지만 1년을 참으면 100만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당연히 1년 참고 100만원 받겠다고 생각한다면 돈을 모으는 스타일입니다. 반면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풀릴 지 모르니 일단 50만원을 받아 챙기겠다고 생각한다면 돈을 쓰는 스타일일 가능성이 큽니다. 돈 쓰기를 즐기는 사람은 뭔가를 살 때 만족감을 느끼죠. 그래서 충동 구매를 하기도 하고 미래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돈 모으기를 즐기는 사람은 은행 잔고가 늘어갈 때 만족감을 느낍니다. 거꾸로 뭔가 사야 하면 기분이 나빠지고요.

 이렇게 돈에 대해 각기 다른 심리반응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많은 사람들이 가정 교육이나 자라난 환경 때문이라 믿습니다. 다시 말해 어릴 때 어떻게 배웠는지가 중요하다는 거죠. 그러나 실제로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얼마 전 알뜰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짠순이 탤런트 한 분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두 아들 중 큰아들은 수입이 좋은데도 씀씀이가 커 돈을 모으지 못하는 반면 박봉의 작은 아들은 악착같이 모아서 집까지 장만했다는 겁니다. 오늘 사연과 판박이죠. 사실 아주 흔한 경우입니다.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면 무엇이 돈에 대한 다른 태도를 결정짓는 걸까요. 마이클 로벤스타인 등이 소비자 연구 저널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뇌의 특징이 돈에 대한 태도에 상당히 영향을 끼친다는군요. 뭔가 사는 걸 상상하게 한 후 뇌 영상을 촬영했습니다. 그랬더니 돈 모으는 성향이 강한 사람은 섬엽이라는 뇌 영역이 활성화했습니다. 섬엽은 불쾌한 경험을 할 때 활성화하는 뇌의 영역입니다. 돈 모으는 사람은 그만큼 돈 쓸 때 불편해한다는 거죠. 다시 돈 쓸 필요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자 섬엽 활동이 둔화하면서 반작용으로 더 강력한 기쁨이 찾아왔다는군요.

02 지름신 잠재우는 훈련법

헤픈 남편도 걱정이지만 사실 아들 걱정도 됩니다. 연년생 아들 둘이 있는데 성향이 너무 다릅니다. 고2인 큰애는 저를 닮아 어려서부터 알뜰하게 저금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작은 애는 용돈을 주면 보름도 안 돼 다 썼다고 칭얼거리거든요. 가끔 군기 좀 잡으려 할 때 아빠가 간섭하며 다 망칩니다. 남자는 돈 없으면 안 된다며 저 몰래 돈을 주니 아이가 점점 더 돈 무서운 줄을 모르네요. 둘째가 절약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뇌가 다르면 불가능한 건가요.

각자 가진 뇌 특성에 따라 돈에 대한 심리 반응은 다르지만 노력으로 얼마든지 균형감각을 찾을 수 있습니다. 돈 쓰기 좋아한다는 건 미래보다 현재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거죠. 멋지긴 하지만 미래에 경제적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또 어느 정도의 참을성은 사회생활을 위해 필요하기도 하고요.

 유명한 1960년대 미국 연구가 있죠. 어린이집에서 머쉬멜로우나 쿠키 같은 맛있는 간식을 보여준 후 하나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이때 먹는 걸 몇 분만 참으면 간식을 하나 더 먹게 했습니다. 참지 못하고 바로 먹어버리면 보상은 없고요.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비교해 보니 순간 만족을 뒤로 미루는 능력이 있는 아이들, 즉 조금 기다렸다가 간식을 하나 더 가져간 아이들이 더 성공했다고 합니다.

 돈 쓰는 충동을 잠재울 몇 가지 훈련 방법이 있습니다. 우선 내 돈이 아니라 신용을 담보로 사는 걸 자제해야 합니다. 소위 ‘현금박치기’를 할 때 좀더 신중하게 지출 여부를 판단하는데요. 그건 미래의 문제가 아닌 현재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현금도 당장 뺄 수 없는 곳으로 옮겨 놓는 게 좋습니다. 뇌에 기반한 돈에 대한 심리 반응은 매우 강력한 충동이기에 그 충동과 싸우기보다 충동이 아무리 솟구쳐도 어찌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친구나 가족 등 가까운 사람에게 돈을 어떻게 절약할 지 이야기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구체적 금액과 날짜까지도요. 이렇게 절제만 하는 게 아니라 보상도 중요합니다. 돈 쓸 때 행복을 느끼는 뇌를 억누르기만 하면 더 큰 충동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대안으로 목표한 절약 계획에 성공하면 모은 돈 일부를 기분 좋게 쓰는 겁니다. 이것 역시 미리 적정 비율을 정해서요. 노후자금이나 자녀 교육 결혼 비용 등을 미리 계획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03 돈 쓰는 훈련도 필요

남편과 아들 걱정 못지않게 고민이 있습니다. 바로 제 마음입니다. 목돈이 나갈 때마다 너무 속상합니다. 얼마 전 남편 몰래 부었던 적금 2000만원을 탔는데, 절반을 고스란히 친정 아버지 다리 수술 비용으로 쓰게 됐습니다. 돈이 있어 도울 수 있는 건 당연히 기쁜 일이죠. 하지만 매번 어렵게 돈을 모으면 꼭 이렇게 쓸 일이 생기니 허무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악착같이 모으기만 한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고요.

돈 모으는 데 집착하는 건 현재를 즐기기보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사는 것은 미래가 아닌 현재입니다. 너무 미래만 걱정하며 살다 보면 어느 순간 후회하기 쉽습니다. 돈은 무엇을 할 수 있는 가치를 지녔을 뿐 그 자체가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무 돈을 모으기만 하는 스타일 역시 돈에 대한 심리적 균형감각이 필요합니다. 돈을 즐겁게 쓰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휴가처럼 즐거운 일을 할 때도 끊임없이 돈 걱정 하며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짧은 인생을 돈과의 전투에 흘려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적정 예산을 정하면 그 안에서 마음 편하게 쓸 줄도 알아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사고 싶은 옷이나 여행 계획을 이야기해 보세요. 기왕 말까지 했으니 내키지 않아도 지갑을 열다 보면 쾌감이 찾아 옵니다. 돈 모아서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면 이제 내 감성에 보상을 해 줄 때입니다. 이렇게 근검절약하며 희생했으니 이제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것 좀 보면서 말이죠.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일러스트=송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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