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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청<53>진보당사건⑧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진보망 사건의 재판정은 줄곧 토론장이었다. 4월24일의 6회 공판에선 진보당의 성격을 싸고 피고간에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피고들중 유일한 비진보당원인 민혁당의 이동화는 한국의 혁신정당을<일본등 서방진영의 사회당우파와 비슷한 성격>이라고 했다. 그런데<진보당과 민혁당중 어느것이 보다 혁신적이며 좌익에 가까운 것인가>라는 검사의 질문이 논쟁의도화선.
▲이동화-민혁당에 비하면 진보당이 좌파에 속할 것이다.
▲김달호-무슨 근거에서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가. 당장 취소하라.
▲이동화-추상적으로 나마 일반의 상식이 그렇게 되어있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진보당을 좌파라고 말한 것은 아니고 비교하라고 검사가 심문하기에 말하자면 어느쪽이 용감하고 경하고 어느것이 좀더 비겁하고 중한가를 따져본다면 진보당은 민혁당에 비해 용감하고 경하기 때문에 그것으로 좌우를 구분했을 뿐이다.
진보당사건 심리종결이 되는 5월8일의 8회공판은 진보당의 정강정책과 평화통일론의 국시위반여부를 싸고 재판장과 피고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동안 심문에만 간략히 답변해온 조봉암도 이날의 보충심문에선 진보당의 노선에 대한 강력한 변론을 했다. 당시의 신문들이 이날의 재판정을<마치 국회의사당에서의 논쟁을 방불케했다>고 보도한것이 그분위기를 말해주고 있다.
끝이 없을 듯한 논쟁을 끝맺은 것은 재판장, 그는 흥분한 피고들을 진정시킨뒤『나는 진보당을 불법단체로 간주하고 현재 심의를 계속하고 있다』라고 결론을 내려버렸다.
당시 배석판사였던 이병용씨는 그때의 어려웠던 토론을 이렇게 회고했다. 『사회민주주의란 용어가 당시만해도 생소하던 때지요. 유병옹재판장이 이동화씨에게<사회민주주의가 도대체 뭐요>라고 묻자 이씨는 손을 쳐들며<아, 일찌기 북구 스칸디나비아로부터…>라고 문을 떼어 긴 실명을 폈어요.
재판이 끝난뒤 유판사는<내가 재판장인지 박사학위 논문을 심사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면서<골치가 아프니 정치학적인 문제는 이판사가 맡아주시오>라고 부탁해요. 이래서 정강정책의 학문적 분석을 해야겠는데 그당시야 국내에 정치학 서적이 거의 없었지요. 그래서 1920년대 일본서적을 참고했는데 애먹었지요.』
결국 모든 심리는 이날로 정결됐으나 그 어느것도 뚜렷하게 잡혀지지 않는 막연함 뿐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최대의 관심거리인 양명산사건이었다.
조봉암의 간첩혐의에 대한 열쇠를 쥔 문제의 인물 양명산이 법정에 선 것은 진보당 관계자의 심리가 사실상 종결된 5월16일.
상오 공판에선 검찰이 병합심리를, 변호인단은 분리심리를 내세워 논쟁했다. 결국 이문제는 결론을 유보한채 재판부는 하오 공판에서 양에 대한 사실심리에 들어갔다.
재판부·검찰·변호인단, 그리고 진보당관계 피고인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양명산이 재판장앞에 섰다. 그는 공소사실에 대해<네 네, 했읍니다>로 일관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여서 방청석엔 잘 들리지 않았지만 특무대에서의 자백을 기초로 한 검찰의 공소내용, 즉 남북을 내왕하며 조봉암과 북괴와의 연락을 도맡아하고 북의 자금을 조에게 전했음을 순순히 시인해 공소사실 심문은 오래걸리지 않았다.
재판장은 양명산과 조봉암의 대질심문에 들어갔다.
▲재판장-조봉암피고와의 관계는?
▲양명산-상해망명 시절부터 잘 아는 사이다.
▲재판장-두 피고는 어떻게 접선했나.
▲양-무역업과 토건업을 하여 돈을 번후 금전관계로 접선했다.
▲조-나는 김사장(양명산을 조봉암은 김동호사장으로 알고있었다)이 무역업을 해 돈을 번것으로 알았을뿐 그가 간첩이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재판장-조피고가 북한 괴뢰에 선거자금으로 2억환을 요구했다는데….
▲양-그렇다.
▲조-그런일 없다. (이 자금은 그해에 있을 5·2국회의원선거자금으로 요청했으나 진보당 사건이 일어나 북한에 전달되지 아니했다는 혐의를 말함)
▲재판장-대통령선거때 자금을 얼마나 주었나.
▲양-5백만환을 주었다.
▲조-나는 1백만환정도 받은 기억밖에 없다
▲양-선거가 끝난뒤 5백만환을 주었다.
▲조-선거후에 그정도의 돈을 받은 일이 있다.
▲재판장-조피고가 불한괴뢰에 돈 5백만환을 백삼 2근을 보내주어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냈는가.
▲양-돈을 보내주어 감사한데 5백만환만 더 보내달라는 편지를 주었다.
▲조-양피고가 북괴간첩으로 남북을 왕래했는지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북괴에 편지를 보내는가.
5월19일의 두번째 공판에서도 두사람의 답변은 철저하게 달랐다.
▲양-그동안 열두차례 남북을 내왕하면서 미화 2만3천달러, 한화2천만환 그리고 인삼·녹용등 북한에서 가져온 물품을 북괴의 지령에 의해 전달했다. 이 돈은 조봉암으로 하여금 미군철수 운동 및 평화통일 운동을 전개하는 신문사를 경영케 하기위한 것이다.
▲조=몇차례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한화3백만환과 미화6백20달러를 받은 일이있다. 선거전에는 선거비용으르, 그후에는 생활비로 보태쓰라고 준 것이다. 사업을 해서 돈을 벌고있는 김사장에게서 친분관계로 원조를 받았을 따름이다.
▲양=조봉암의 밀서를 가지고 북한으로 갔었다.
▲조-그런 일은 결코 있을수 없다.
두차례의 공판에서 계속 두피고의 진술이 엇갈리자 재판장은 조봉암에게『부인만 하지말고 사실대로 진술하라』 고 주의를 환기했다. 그러자 조피고는『그말은 양명산피고에게 해야할 말이다』라고 응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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