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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6자회담 휴회 동안의 과제

중앙일보

입력

베이징 6자회담에서 당사국들이 공동문건을 놓고 막바지 조율에 나섰지만 합의 도출에 실패하고 3주간 휴회하기로 했다. 결렬이 아닌 휴회 선언은 참가국 모두 북핵 해결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13일간 보여준 미국과 북한의 인내심은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테러가 확산되고 이라크전쟁의 수렁에 빠진 미국이 북핵 문제를 평화적 수단이 아닌 다른 수단을 동원해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밑으로부터의 변화' 요구를 받고 있는 북한 지도부로서도 핵문제로 외부 세계와 갈등을 지속할 여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북한이 북핵 협상에 앞서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한 것은 '수령'의 권위를 빌려서라도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국제사회에 강하게 내비친 것이다. 미국이 지도자 중심의 유일체제란 북한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면 테러문제에 있어 북한 변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북핵 문제는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로 '역사-구조적 성격'을 갖는다. 10여 년 이상 끌어온 북핵 문제를 며칠간의 협상으로 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기본 틀을 새롭게 짜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번 4차 6자회담에 참가한 주된 당사자인 남북한과 미국 등이 "실질적 진전과 전략적 결단"을 강조하고 있어 1차 6자회담 때의 '의장요약'이나 2, 3차 때의 '의장성명'보다 높은 수준의 합의문이 도출될 가능성이 높다. 합의문 초안에는 남북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유효성을 재확인하면서 북한의 핵무기 및 관련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대북 안전보장을 제공하며, 미국과 일본의 대북관계를 정상화하고 에너지 지원 및 대북 경제협력에 나선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이번 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기본 틀과 프로세스를 만들어내자는 공감대는 형성됐다. 쟁점은 비핵화의 범위와 방법이다. 미국은 "현존하는 모든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효과적 검증을 수반하여 폐기할 것"을 주장한다. 미국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핵개발 계획을 비롯한 핵무기와 모든 핵프로그램의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핵위협이 제거되고 북.미관계가 정상화되면 "핵무기 및 핵무기 계획을 검증 가능하게 폐기할 것을 공약"함으로써 핵의 평화적 이용권 보장과 경수로 공사의 재개를 주장하고 있다. 쟁점 현안은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 권리 문제다. 이는 에너지 주권 차원의 명분과 경수로 제공이라는 실리가 함께 걸린 문제다.

북핵 협상의 '뜨거운 감자'인 핵의 평화적 이용 문제는 중수로와 경수로를 분리하여 접근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즉 플루토늄 추출이 비교적 쉬운 중수로 방식의 핵발전시설은 모두 동결.폐기하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건설하다 중단한 경수로발전소 건설문제는 이번에 최종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한반도 비핵화 시 공사 재개를 고려해 본다'는 식으로 현 단계에서 동결하고 진행상황에 따라 공사재개 여지를 남겨 두는 방법이다. 경수로의 건설과 건설 이후의 관리를 KEDO가 맡는다면 핵무기 개발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휴회 기간 당사국들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목표로 실질적이고 진전된 내용의 합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물밑 접촉을 지속해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방안을 만들 것을 기대해 본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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