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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만하면 나오는 은퇴설-사망설|브레즈네프는 어디가 아픈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모스크바에선 요즘 레오니드·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이 곧 물러나리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지난 18년동안 초강대국 소련을 이끌어온 75세의 브레즈네프가 건강 때문에 더이상 자리를 지킬 수 없게돼 오는12월 건국기념일에 영예롭게 은퇴할 것이며, 소련공산혁명 후 처음으로 죽음이나 숙청에 의하지 않은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지리라는 얘기다.
브레즈네프의 건강과 지위를 결부시킨 소문은 70년대 중반이후 숱하게 나돌았다.
지난봄에도 심장마비로 쓰러졌다는 보도가 있고나서 은퇴설·사망설이 난무했지만 결국 후계다툼에서 나온 때이른 소문들로 판명됐었다.
브레즈네프는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아픈 것일까?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병원 의사이며 소련의학계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윌리엄·크나우스 박사가 최근 워싱턴포스트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이제까지 막연하게만 전해졌던 브레즈네프의 병력을 자세히 알아본다.
브레즈네프의 몸상태가 정확하게 어떠한지는 크렘린 내부의 몇몇 사람을 빼놓고는 아무도 알수 없다. 카터의 치질이라든지, 레이건의 요도질환 같은 미국대통령의 병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곧 전국민에게 알려지지만, 소련지도자들의 건강문제는 철저히 비밀에 붙여지기 때문이다.
브레즈네프가 몸져눕게 되면, 지난봄에 그랬던 것처럼 『휴가로 쉬고있다』고만 발표되게 마련이다. 정말 사망이나 해야 공식발표가 있을 것이다.
사실 브레즈네프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이다. 브레즈네프의 주치의 예프게니·차조프 박사를 비롯해서 그의 치료에 참여한 소련의사들이 조금씩 흘리는 정보들을 종합해보면, 지난 10년동안 브레즈네프가 버틸 수 있은 것은 순전히 굳은 의지와 조심스런 치료 덕분이었다.
브레즈네프의 가장 큰 병은 전신의 동맥경화증이다. 이 때문에 브레즈네프는 관상동맥과 뇌혈관이 굳어져 최소한 두번의 심장발작을 일으켰으며 뇌졸중도 큰 것으로 한번, 가볍게는 여러번 겪었다.
같은 고령자라도 레이건 대통령은 사정이 다르다. 71세의 레이건은 브레즈네프보다 불과 4살 적지만 동맥경화증세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브레즈네프가 만약 힝클리의 저격을 받은 때의 레이건과 비슷한 상처를 입는다면 즉사할 것이다. 브레즈네프는 10년전에 담배를 끊었지만 그 이전까지는 골초였기 때문에 심한 폐기종(폐조직이 파괴되는 병)과 만성기관지염에 걸려있다. 호흡기 기능면에선 불구자나 다름없다. 항상 숨이 차고 한번에 몇발짝 이상은 걸을 수 없다. 연설도중 자주 말을 멈추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총탄은커녕 심한 감기라도 잘못 걸리면 치명적이다.
뇌졸중의 후유증도 크다. 70년대 중반에 일으킨 오른쪽 뇌의 심한 발작탓으로 그의 왼쪽 반신은 아직도 온전치 못하다. 한동안은 말도 분명치 않았다. 귀도 잘 안 들린다.
공식만찬 때는 음식을 흘리지 않기위해 숟가락을 자주 사용할 정도다.
해외여행도 지극히 제한받는다. 긴 비행기여행을 하게되면 폐혈관의 피가 엉기는 혈전성 색전증이 일어날 위험이 크다.
그래서 지난80년의 인도여행 같은 먼 나들이 때는 피가 엉기지 않게 혈전용해제를 복용하곤 한다. 그러나 올봄 중앙아시아에 갔을 땐 이 약을 쓰지 않은데다 부담스런 일정을 짜는 바람에 건강이 악화돼 이번의 은퇴설까지 낳게된 것이다.
심장발작을 일으킨 후 한때 그는 미국서 수입한 심장박동보조조정기(페이스메이커)를 사용해야만 했다.
60년대 말쯤 주치의들은 심장수술을 고려했었지만 위험부담이 커 포기했다.
지금 브레즈네프가 받을 수 있는 치료란 폐질환을 다독이기 위해 항생제를 꾸준히 복용하고 높은 혈압을 잘 조절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정치와 고혈압은 상극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폴란드사태가 점차 심각해지자 주치의들은 브레즈네프가 쇠약한 상태에서 잘못된 정책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엉망진창인 건강상태는 브레즈네프의 심리상태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자신의 병약함을 비관하고, 더우기 최근 오랜 동료들이 하나둘 죽어가자 우울증은 더욱 심해졌다. 현대의학만으론 안심되지 않는지, 근년 들어선 신통력을 가졌다는 주나란 이름의 앗시리아 여인을 자주 불러 얘기를 나누고 최면치료를 받곤 한다.
그래도 최근까지 브레즈네프의 정신력만은 변함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적어도 지난봄까지 세계지도자들과 만난 브레즈네프는 쇠약하긴 해도 권력자의 풍모를 잃지않고 있었다.
그가 사실상 은둔상태에 있는 지금, 상태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알수 없다.
한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매우 질높은 치료를 받고있다는 사실이다. 개인주치의인 차조프 박사자신이 뛰어난 심장전문의인데다 미국 등 서방국의 일류전문의들과 항상 접촉하며 브레즈네프에게 필요한 치료법이나 기구들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런 인술의 노력이 언제까지 운명과 역사의 손길로부터 브레즈네프를 지킬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워싱턴포스트지=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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