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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 논의 본격화할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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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황우석 연구팀이 세계 최초의 복제 개 '스너피'를 탄생시켰다. 이번 연구 성과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지난해 5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황 교수팀의 인간 배아 복제 줄기세포주를 둘러싼 윤리적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했던 네이처지에 실렸다. 이로써 황 교수팀은 올해 5월 사이언스지에 실렸던 맞춤형 줄기세포 관련 논문과 더불어 생명 복제 기술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연구그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 황 교수팀의 개가(凱歌)에 먼저 박수를 보낸다.

▶ 구영모 울산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

세계 최고라고 내세울 게 변변찮은 우리 형편에서 보면 연타석 홈런을 날리고 있는 황 교수팀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난봄 '황우석 신드롬'에 온 나라가 들떴던 기억을 돌이켜 보자. 언론 매체들은 연일 그를 특집기사로 다뤘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윤리적 문제와 넘어야 할 난제를 양념처럼 짚기는 했으되, 그를 치켜세우는 데 훨씬 열심이었다. 찬양 일색의 사회적 분위기에 짓눌려 마땅히 있어야 할 생명윤리 토론은 질식했다. 이는 성숙한 사회라면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복제 기술의 발달은 실로 눈부시다. 그러나 복제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 복제의 위험 또한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 복제 개가 탄생함으로써 복제 기술 개발의 초점이 영장류 복제로 옮겨갈 위험도 한층 높아졌다.

그동안 황 교수팀은 인간 복제에 대한 반대 입장을 여러 차례 천명했다. "앞으로 1세기 안엔 복제 인간이 없을 것"이란 수사학적 표현까지 동원하며 인간 복제 가능성을 일축했다. 현재 기술 수준으론 실제 복제 인간이 탄생할 확률은 극히 낮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만약 누군가가 인간 복제를 시도한다면 학술지에 이미 공개된 황 교수팀의 기술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복제 기술이 미래의 인간 복제를 위한 사다리 구실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과정이야 어쨌든 우리나라는 복제 기술 분야에서 기술 선도국이 되었다. 세계가 우리 복제 기술의 발전 속도와 방향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는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 황 교수팀에 거액의 연구비를 제공하고, 경찰 경호를 붙이는가 하면, 줄기세포은행의 설립을 약속한다.

그러나 복제 기술의 책임 있는 사용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진하거나 복제 기술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는 정부가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4월 출범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도 활동이 극도로 부진하다. 지금까지 전체회의는 한번 밖에 열리지 않았다. 그나마 장관급 위원(21명 중 7명)은 출석도 하지 않는다. 무슨 거창한 명칭보다는 적극성과 진지함이 훨씬 중요한 것 아닌가.

현재 한국과 영국만이 체세포 복제를 법(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으로 허용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이에 대한 관리와 윤리 의식이 영국보다 허술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세계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데 우리는 생명윤리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고 있다.

마치 참여정부는 복제 기술에 '올인'하는 하나의 국가 기업처럼 보인다. 핵심 당국자의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생명 윤리만으로 선진국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 윤리를 희생해 가면서 선진국을 꿈꾼다면 그건 부질없는 환상일 뿐이다.

220년 전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이렇게 썼다. 내용 없는 사상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라고. 우리 현실을 칸트 식으로 패러디해 보면 어떨까. 과학 없는 윤리는 공허하고, 윤리 없는 과학은 맹목적이라고 말이다.

구영모 울산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