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규제로 묶은 판교, 공급 차질 없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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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당정협의를 통해 판교 신도시에 원가연동제를 도입하고 중대형 아파트에는 채권입찰제를 적용키로 했다. 중소형 아파트의 전매 제한기간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난다. 판교 개발의 틀을 왕창 바꿔 아파트 분양가 잡기에 총력전을 펴는 양상이다.

이번 조치로 판교발(發) 부동산 폭풍은 상당 부분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업계는 평당 2000만원에 육박하리라던 중대형 아파트 예상 분양가가 평당 1000만~1500만원 선으로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매 제한기간이 10년으로 늘어나 청약경쟁률도 한풀 꺾일 전망이다.

당정의 초강수는 집값 폭등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강남 집값 안정을 위해 추진된 판교개발이 거꾸로 강남.분당 집값 폭등의 뇌관이 돼버린 당황스러운 결과를 낳은 것이다. 판교 분양가를 잡지 못하면 8월 부동산 대책의 약발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정부의 고민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판교 공영개발 방식이 낳을 후유증도 만만찮다. 외환위기 이후 주택시장은 시장 자율에 맡긴다는 원칙부터 크게 후퇴했다. 6년 전에 폐지된 채권입찰제를 부활시키고 전매제한 기한도 연장하는 등 개발시대에 횡행했던 부동산 규제책이 총동원되고 있다. 한마디로 판교가 규제 백화점이 돼버린 꼴이다. 당국의 중장기적인 주택 수요.공급의 잘못된 예측이 결국 누더기식 판교개발로 귀착된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집값 폭등 원인을 건설업체의 터무니없는 폭리와 일부 투기수요 탓으로 돌려왔다. 그 결과 나온 것이 공영개발이다. 그러나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중대형 아파트 공급부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집값 불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공영개발 비중이 커지면 민간 건설시장은 위축되고 민간업체들은 단순 하청업체로 전락하게 마련이다. 주택 공급의 키를 쥔 정부는 이제 그 역할에 걸맞은 책임도 져야 한다. 시장 실패에 이어 정부 실패까지 겹친다면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