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O철수이후의 중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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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스라엘이 6월6일 대군을 움직여 레바논을 침략한 것은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였다. 하나는 이스라엘을 사정거리에 두고 자주 무장공격을 가해오는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레바논 땅에서 영구적으로 추방하는 군사적인 목표이고, 다른 하나는 레바논에 친 이스라엘 기독구정권을 세우는 정치적인 목표다.
이스라엘은 레바논침략과 무차별 파괴, 민간인 대량살상에 대한 세계여론의 지탄을 의식하고 레바논침략은 국경지대에 폭 40km의 완충지대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아무도 믿지 않는 구실을 둘러댔다.
이스라엘은 결국 이 두 가지 목표 중에서 군사적인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70여일 동안의 숨막히는 군사작전으로 PLO를 서 베이루트의 마지막 근거지에 몰아넣고서야「하비브=특사를 앞세운 미국의 협상 안에 동의한 것이다.
PLO는 레바논을 떠나 중무기의 무장을 해제한 채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 이라크, 튀니지, 알제리, 남 예멘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우선 게릴라조직으로서의 PL0의 해체를 의미한다.
PLO가 떠남으로써 생기는 빈자리에는 미군 8백, 프랑스군 8백, 이탈리아군 5백명으로 구성된 국제평화군이 배치되어 PLO철수를 감시하고 어쩌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이스라엘과의 충돌을 방지하는 역할을 맡기로 되었다.
이렇게 해서 레바논의 총성은 일단 멎었다. 시리아군, 이스라엘군, PLO가 들어와서 벌이는 싸움에 평화를 뺏기고 목숨을 잃고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정부까지 잃어버린 레바논 사람들이 이제야 폐허에서나마 새 출발을 할 수가 있게된 것이다.
그러나 PLO가 떠나는 것으로 문제가 아주 해결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지금부터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레바논에 강력한 중앙정부를 세우는 일만해도 힘이 팽팽하게 맞선 회교도와 기독교도는 정권싸움에서 언제 무력에 호소할지 모른다 그들이 다시 무기를 들면 그들의 배후에 있는 시리아와 이스라엘은 거의 자동적으로 싸움에 끌러들게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PLO를 레바논에서 떠나게 만드는 미국 안이라는 것은 급한 불만 끄자는 것이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은 아닌 것이다.
눈을 레바논 밖으로 돌려 팔레스타인 피난민들에게 민족국가를 세워주는 일에 가서는 문제는 더욱 어렵다.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에다 팔레스타인 자치구를 허용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성격의, 사실상의 이스라엘 통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자치를, 하루아침에 고향을 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받아들일리가 없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자치나 민족국가가 실연되지 않는 한 PLO는 재건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요르단, 시리아, 이집트 등 중동의 어느 곳에서, 언제 제2,제3의 레바논사태가 일어날는지 모르는 일이다.
이스라엘이 압도적인 힘의 우위에서고, PLO가 중동을 유낭하는 신세에서는 팔레스타인 자치협상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PLO의 레바논 출국을 지켜보면서 가벼워야 할 세계여론의 마음이 오히려 무거워지는 것이 아랍-이스라엘분쟁의 참 모습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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