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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시민의 긍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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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기장 질서」는 어느 면에서 「사회의 질서」를 반영한다.
경기장은 선수들간에 벌어지는 경쟁이 있는 곳이지만 단순히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싸움판은 아니다.
경기를 하는 선수들 자신이 자신의 의지와 용기를 시험하며 즐길 뿐 아니라 그것을 관람하는 관중이 즐기는 장소가 이곳이다.
그러기에 경기장은 하나의 문화적 시설이며 생활을 즐겁게 하는 위락시설이다. 생활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 찾는 사람도 있을 뿐 아니라 생활의 불만과 고통을 풀기 위해 찾는 곳이 그곳이다.
그 점에서 경기장은 사회의 희망과 불만을 증식하고 혹은 소화하는 증식 노이며 정화장 일 수 있다.
스포츠의 가치를 인정하고 스포츠 경기의 사회적 효능을 인정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경기장의 의미가 유별난 것이다. 그러니까 경기장의 환경과 분위기가 좋아야 하고 경기의 내용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훌륭한 경기와 경기장의 분위기가 바로 사회의 희망과 인생자체의 의미를 보다 아름답게 보다 충실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경기장 질서확립」이란 것은 지금 우리사회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일 수 있다.
더우기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마당에서 경기장의 질서를 확립하는 것은 아주 급한 과제일 것이다.
외국 손님들을 초대해 놓고 온갖 추악한 무질서를 전시시킬 목적이 아니라면 지금부터 경기장 질서를 잡아가는 노력이 있어야한다.
우선 경기의 주체인 선수와 심판과 임원부터 자질과 매너를 닦고 질서를 수범해야겠다.
경기장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대부분이 선수와 심판과 임원 때문에 생긴다는 것도 원인이겠거니와 그들이 경기와 경기장 분위기의 책임을 지고있다는 점에서다.
심판의 모호한 판정, 임원의 과격한 행동, 선수의 무지와 부정이 흔히 경기장 무질서를 촉발한다는 것을 명심해야겠다.
처음부터 자질을 가려 뽑는 것도 중요한 일이거니와 교육과 훈련으로 규칙의 준수와 교양등 스포츠맨십을 철저히 다지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거기에 관중의 매너도 중요하다. 문명사회의 민주시민으로서 갖출 시민적 교양이 관중에게 요구된다는 뜻이다.
그것은 경기분위기에 무관하게 마냥 얌전하고 무 감동하라는 뜻이 아니다. 경기 분위기에 일체가 되어 주먹을 흔들며 환호하고, 혹은 야유와 고함으로 상대팀을 조롱하는 것은 응원자의 당연한 관전태도다. 또 그 같은 관전의 흥분상태가 없다면 경기도 있을 필요가 없고 경기장에 갈 필요도 없다.
하지만 거기엔 일정한 규칙, 관전의 예절과 교양이 있어야 한다.
경기자체를 파괴하는 행위나 경기분위기를 깨뜨리는 몰염치한 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 관람은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며 자기만을 위한 경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난동과 폭력은 사회질서의 적일 뿐 아니라 경기장 질서의 암이다. 불법적으로 무기를 휘두르며 사회의 안녕 질서를 깨는 폭력이 당연히 배척되어야 하듯이, 함께 즐기는 경기장의 의미를 파괴하는 난동은 결코 용서될 수 없는 것이다.
그 점에서 최근 경기장 난동자를 적발하여 다스리겠다는 행정 당국의 방침은 우선 수긍이 된다.
그러나 폭력자체를 처벌하는 것 보다 그 예방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도 필요하다.
난동의 무기가 되는 유리병의 휴대를 금 하든가, 운동장용 종이 병의 개발로 대비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학생 등 단체의 책임자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학교나 사회에서의 일반적인 질서교육의 보편화도 요구된다.
경기장 질서의 파괴는 폭력과 난동만에 그치지 않는다. 암표와 쓰레기 등 경기장 분위기를 해치는 요소들은 모두 무질서의 원인이다
많은 관람객을 수용할 것을 상정한 경기장 시설의 충실화가 우선 중요한 것이나 그 중에도 화장실, 쓰레기장, 수도시설은 충분해야겠다. 휴지를 버릴 마땅한 장소가 없어 무질서를 유도하는 일이 없어야겠다는 뜻이다.
그러고 나서 관람객에게 질서유지를 호소하며 민주시민의 책임을 고취하는 질서호소방송과 독려반 운영도 당분간 필요할 것 같다.
궁극적으로 질서는 문화의 상징이며 민도의 반영이기 때문에 그 문제는 우리국민의 문화수준이 향상되면 저절로 해결될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 문화수준이나 민도의 향상은 바로 국민 스스로의 자각과 노력의 산물이며 또 사회지도층의 적법한 규범실천의식의 소산이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질서를 생활화하는 노력에 나아가기 위해 이제 경기장에서부터 질서 지키기에 합심·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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