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일씨의 「불의 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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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달의 소설중에는 김원일씨의 『불의 제전』(문학사상), 이문구씨의『변사또의 약력』 (문학사상), 서동훈씨의 『서러우면 서러운 대로』(작가3),오탁번씨의 『경받이』(현대문학) 등이 평론가들에 의해 주목받았다.
김원일씨의 『불의 제전』은 1950년 1월부터4월까지 경남의 어느 조그마한 읍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다.
문학충상에 30회의 연재하여 원고지 3천3백장에 달하는 분량인 이소설은 한마디로 1950년대의 사회사라 할 수 있다.
일제때 좌익운동을 하다 학도병으로 끌려가 팔을잃고 돌아온 후 허무주의자로 변신한 심찬수, 지주에서 상업자본가로 탈바꿈하는, 그의 부친, 전통을 고수하는 보수주의자 안전총, 빨치산 수괴 조민새, 좌익에서 온건한 민족주의자로 변모하여 농촌운동에 현신하는 박도선, 좌익행동대원 차구열, 억쎈 생활력으로 현실을 이겨내는 그의 부인 아치골댁들 5∼6가구을 중심으로 80여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 소설은 혼돈의 시기인 1950년 초를 정공법으로 그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많은 소설들은 소년의 눈으로 본다든지 연대기적으로 쓰여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소설은 현장의 인물들을 그림으로써 리얼하고 소설적 재창조에 충실하다. 한 장면을 2백장까지 써나간 경우도 있는데 튼튼한 산문정신을 보여준다.
이문구씨의 『변사또의 약력』은 주인공 <나> 가 막일관에서 만난 「하사또」란 별명이 붙은 십장을보고 느낀것을 쓰고있다. 여기서 이씨는 한 따스한 인간을 그리고 있다. 딴 일꾼들이 모두 싫어하는 「하사또」란 인물은 실상 자기 일에 충실하며 주위에 대해 깊은 사랑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이씨는 지금까지 어떤 소설적 상황을 제시한 가운데 현실비관과 인문성에 대한 탐구를 병행해왔는데 이 소설에서는 소설적 상황을 앞세우지 않고 직접 한 인간과 대면하여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것을 가진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보여 주려한다.
서간훈씨의『서러우면…』은 백정·가마꾼·걸인으로 사는 3대의 이야기. 일제 때부터 6·25에 이르는 시기까지 시대적 변화를 전혀 모르고 상민으로 만족하는 이들의 깨지 못한 의식은 비극적이며 또 시사적이다.
오탁번씨의 『점받이』 는 수태를 거부하는 부인을 둔 중년남자가 이웃 불임녀를 바라보는 이야기인데 인문본생을 감각적이면서도 아름답게 그렸다.

<도움말 주신분="김윤식·김치호·권영민">

<작가와의 대화>

<"오늘의 우리를 결정지은 밑바탕 이념대립보다 인간적 측면 그려">
해방에서 6·25에 이르는 기간은 우리 민족의 시련기였다. 일제식민지배가 남겨준 많은 모순이 드러났고 특히 좌·우의 갈등은 남북분단을 가져왔으며 정부수립 이후에도 사회적 혼란을 야기 시켰다. 그리하여 마침내 동족상간의 민족적 비극인 6·25가 일어나게 됐다. 이러한 시련의 시기를 문인들은 그들의 작품 속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 시기를 무대로 한 작품은 따지고 보면 그렇게 많지 않다. 소설가 김원일씨는 그 많지 않은 작가들 중의 한사람이다. 그는 첫 창작집『어둠의 혼』, 두 번째 창작집 『오늘 부는 바람』속의 작품들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고 중편 『노을』과 이번의 장면 『불의 제전』으로 작업을 확대 심화시키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 시기의 아픔이 강렬하게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시기야말로 오늘의 우리를 규정짓고 있는 밑바탕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소설로 육화시켜 보려고 애쓰게 되었읍니다.』
개인적으로 본다면 그는 그 당시 유년이었다. 김씨는 그 유년의 어떤 아픈 기억의 끈에 매달려 고뇌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이 어찌 김씨 개인만의 것이겠는가.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 상처인 것이며 김씨의 소설은 30여 년이 지난 오늘 그때의 상처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방될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 당시 이데올로기는 하나의 광풍과 같은 것이었읍니다.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광기에 횝쓸려 들어가 목숨을 잃은 사람도 많았읍니다.』김씨는 그러므로 그 당시를 쓰면서 사상의 대립보다는 한시대의 조류에 횝쓸려 고통받은 사람들을 인간적인 측면에서 접근해가고 그들에게 비극을 안겨준 시대의 모습을 그려 보고자한다.
『해방 직후의 시기에는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뿐 아니라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 등 사회각계 각층의 균열이 심했던 때입니다. 또 혼란이 가져온 빈곤이 심했던 때이기도 하고요. 이러한 시대를 총체적으로 그려보고 싶은 것이 욕심입니다.』
이 시대를 소설로 쓰는데는 자료의 부족, 현실적인 제약이 많았다고 한다. 자료는 당시 신문스크랩과 요즘 활발하게 나오는 사회과학서를 참고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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