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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YMCA60년 서울 Y회관 건립|수복후 프로그램 늘면서 새건물 필요성 절실 위원회 구성하고 모금 위한 「국제축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미대사관서 열린 축연서 12,000컷 모아 폐허가 된 서울도 수복한지 2∼3년만에 제법 제 모습을 되찾아 개인이나 단체나 다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한국YWCA와 서울Y가 명동에 있는 적산가옥을 인수하여 회관을 마련하는데 당시 직원들의 어려움은 이야기한바 있다.
다행히도 이 회관이 전란동안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에 피난나가기 전과 똑같이 위의 살림집은 연합회가, 아래쪽 큰 훌은 서울 Y가 각각 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부서지지 않은 것만 다행으로 활동했으나 2∼3년 지나는 동안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날로 새집들이 여기 저기 우뚝 솟아 아무리 욕심 없고 초연한 우리들이지만 새 건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필요해도 선뜻 실행에 옮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두평짜리 집이 아니라 적어도 Y가 현재 하고있는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크기, 몇백평의 건물이 되어야 할테니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돈을 직접 버는 남자들이라면 회원들의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어떻게 해본다지만 여자들만의 이 기관이 건축비를 마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고문총무 박「에스더씨는 그의 치밀하고 조직적인 두뇌와 희생적인 정신을 발휘하여 하기 힘든 일을 하고 말았다. 우선 서울 Y가 사용하고 있는 자리 6백평이 좀 넘는 대지 (기존 목조 강당을 헐고)에 서울Y회관을 짓기로 했다.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어떤 규모의 일이라도 위원조직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방식으로 일하는 방법인 것을 박「에스터」씨는 잘 알고 있었다.
위원회의 위원은 모집하는데 도움이 되는 이어야 하며 또 직접 나서서 뛸 수 있는 사람,돈을 내줄만한 사람을 많이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같은 점은 위원회 구성때 층분히 고려되었다.
이런 모든 조건을 감안해서 서울YWCA회관 건축 모집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명예회장에 당시 이승만대통령부인 「프란체스카」여사, 위원장에 당시 서울Y회장 최이권씨, 모집을 위한 특별위원회 회장은 당시 미국대사 부인 「다올려」여사로 하여 우선 모집을 위한 큰 행사를 하게 되었다.
이 모집위원회는 주로 연합회 국제친선부 의원들로 구성되었다. 이 행사는 「국제축연」 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문자 그대로 드물게 보는 큰 잔치였다. 국제적인 안목이 있는 박「에스터」의 모든 역량이 다 발휘된 그런 향연이었다.
이 축연은 57년 5월15일에 열렸으며 장소는 정동 미국대사 관저. 한국사람으로는 특별한 일없이 들어갈 수 없는 그런 장소에서 한국에 와있는 외국대사관원들이 거의 다 동원되다시피하여 인원은 상당수에 이르렀다.
지금은 외국기관의 부인회·자선기관 등에서 바자를 많이 하여 사람들이 익숙해있지만 그때만 해도 우리 한국사람들에게는 이런 행사가 대단히 새로운 것이었고 외국사람들에게는 멀리 한국에 와서 자기네식의 축제를 갖는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어쨌든 각 대사관에서는 자기네 고유의 음식이나 물건을 기증하여 팔아 기금에 보탰다.
이날 참여한 수는 3천명이 넘었다. 물론 모두 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간 것이다. 그날 봉사한 사람도 공짜로 입장한 사람이 없었다. 공짜를 좋아하고 대접받는 사람이면 그런데는 표를 안내고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는 일하면서도 돈내고 들어가야 된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사회 봉사는 그런 것이라는 것도 우린 그때 배웠다.
이날의 프로그램은 하오 4시부터 시작하여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앞서도 말한것처럼 각 대사관이 기증한 음식과 물건들, 각종 게임, 음악, 필자가 준비한 이대영문과생들의 연극 (영어극, 제목은 『세익스피어의 여생인물들의 모임』), 김정옥씨(당시 이화여대 학생처장) 와 미국 선교사로 이대영문학과 교수인「미스·크레인」 두 교수의 손금보기는 대단한 인기종목이기도 했다.
밤에는 미 8군 밴드에 맞추어 무도회로 이날의 향연은 유례 없는 화려한 잔치로 끝났다.
비평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으례하는 버릇으로 『그런 일은 한국 실정에는 너무 사치야』 하는 비방도 받았지만 이날의 수입 1만2천달러가 특별위원회 의장 「다울링」여사에 의해 최이가 회장에게 전달되었다.
이 잔치로 박 「에스터」고문총무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어떤 일을 하든 치밀한 계힉이 있어야 할 것, 위원회가 거듭 모여 많은 사람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졔속>^^<사진>5월 미 대사관처에서 열린 시건립 모급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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