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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정국 회오리 … 폭동 조짐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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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1년간에 걸친 수단의 내전 종식을 위해 노력해온 존 가랑(60.사진) 부통령이 지난달 31일 헬리콥터 추락으로 사망했다. 수단 정부는 1일 "가랑 부통령이 우간다 캄팔라에서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과 회담한 뒤 Mi-72 헬기 편으로 귀환하던 중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9일 부통령으로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돼 참변이 일어나자 그가 이끌어온 '수단인민해방운동(SPLM)'의 거점인 남부지역 주민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사고 소식에 흥분한 남부 주민들이 이날 수도 하르툼 거리로 뛰쳐나와 돌을 던지고 차량을 공격하는 등 폭동 조짐마저 일고 있다. 이들은 가랑의 사망이 사고가 아닌 암살일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 가랑 누구인가=가랑은 내전으로 황폐해진 수단이 평화의 길을 찾도록 애써온 핵심 당사자였다. 수단의 남부지역은 사실상 그와 SPLM이 통치해 왔다. 오마르 하산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의 영향력은 수도 하르툼을 중심으로 한 북부 지역에만 통했다. 정부 측 주류는 무슬림이다. 반면 가랑이 이끌어온 남부지역은 기독교와 애니미즘(정령신앙)을 믿어왔다.

무슬림은 1983년 남부지역에 이슬람 성법(聖法)인 샤리아법을 믿으라고 강요했다. 남부는 강력히 반발했고, 마침내 내전이 터졌다. 내전은 지난 1월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무려 2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양측은 1월 평화협정을 체결했고, 가랑은 지난달 9일 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취임식장에서 "내가 오늘 여기에 온 것은 내전이 끝났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 암살 음모설=현지 언론은 사고 원인이 악천후 탓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남부인들은 평화 무드를 깨려는 집단이나 가랑과의 권력 분점에 불만을 품은 쪽이 범행을 저질렀을 수 있다고 본다. "가랑이 탄 헬기는 대통령 전용기인데 사고가 난 것도 이상하지 않으냐"는 주장도 나온다. 암살 소문이 퍼지면서 하르툼을 중심으로 주유소를 약탈하는 등 소요사태가 일고 있다. 하르툼에서 근무 중인 자나두사의 김동환 부장은 "시내에서 한국 사람이 탄 차량도 돌팔매질을 당했다"고 전했다. 수단 주재 한국 대사관은 이날 오후 수단에 사는 한국 교민 83명에게 이날 외부 출입을 삼갈 것을 당부하는 등 긴급 연락망을 가동했다.

◆ 향후 전망=알바시르 대통령과 SPLM 모두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당황해 하고 있다. 동거정부를 꾸리기로 한 알바시르 대통령은 갑자기 파트너를 잃었다.

가랑은 사망 전 남부 10개 주 주지사에 대한 임명권을 행사하는 등 권력 분점 작업에 들어갔었다. SPLM은 2인자 살바 키르가 이끌게 된다. 키르는 "가랑 부통령의 죽음은 사고사"라며 평화협정을 충실히 준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민은 불안해 하고 있다. 평화의 한 축이 무너졌고, 또 정국이 어떻게 굴러갈지 갈피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일 기자,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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