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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진짜 인디정신은 이런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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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 사진=안성식 기자

지난달 31일 저녁, 귀국하자마자 비보가 들렸다. 알몸을 노출하는 전대미문의 방송 사고. 홍대에서 활동하던 밴드가 대형 사고를 쳤단다. 오직 음악을 위해 불태운 인디 밴드들의 열정에 이렇게 얼음물을 끼얹다니…. 그들의 음악이 아무리 좋다 한들 무얼 하나. 그들의 태도는 인디 정신에 어긋나는 게 아닌가. 사흘간 몽유도원을 거니는 동안 누군가가 도끼 자루를 부숴 버린 느낌이다. 이 글은 원래 이렇게 시작하려는 게 아니었는데….

지난 5월, 가슴 떨리는 초대장이 날아왔다. 올해 9회째를 맞은 일본 후지록 페스티벌(7월 29~31일)에 한국 대표로 참여하라는 것이었다. 사흘 동안 전 세계 내로라하는 뮤지션들과 13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모이는 세계적인 록 페스티벌에 우리가, 그것도 한국 대표로 가게 되다니.

큰 무대에 서려니 준비할 게 많았다. 일본어와 영어로 된 프로필, 홍보용 스티커와 라이터, 공연 실황과 뮤직비디오가 담긴 동영상 CD를 직접 준비했다. 출국 직전인 7월 26.27일 신촌의 작은 라이브 클럽에서 '후지산 태극기 응원 콘서트'를 열었다. 국내 팬들을 위한 무료 공연이었다. 350여 팬들의 기를 듬뿍 받았다. 자, 이제 출정이다.

29일 페스티벌이 열리는 나에바 스키리조트에 도착했다.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입이 딱 벌어졌다. 끝도 보이지 않는 주차 행렬. 수만 개의 텐트가 산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콜드 플레이와 푸 파이터스가 공연하는 무대로 향했다. 무대에서 산 중턱까지 야트막하게 이어지는 완만한 언덕은 천연의 공연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무대 양 옆에는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뮤지션의 땀구멍까지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의 숨소리까지 잡아내는 최고의 사운드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몸을 사리지 않는 연주에 시종일관 점프를 하며 즐기는 관중 속에서 우리도 마냥 즐거웠다.

30일. 공연 날이다. 공연장까지 우리를 태워줄 차가 왔다. 무대에 도착하니 악기들이 'Oh! Brothers'라고 적힌 케이스에 담겨 준비돼 있었다(국내 페스티벌에서 이런 배려는 상상하기 힘들다). 리허설을 마치고, 공연 시작 사인을 기다렸다. 긴장했다. 그러나 덤덤한 척했다. 누구 하나든 긴장하면 나머지 멤버들도 떨게 되니까.

"우리 재미있게 놀아보자고!"

공연 시작. "와~"하는 함성이 들렸다. 200~300명의 관중이 몰려왔다. 한국말로 응원하는 소리도 들렸다. 힘이 났다. 첫 곡이 끝나자 1200여 명이 모여들었다. 공연은 점점 열기를 더했다. 관객들은 보컬 성수의 게다리춤까지 따라하는 게 아닌가. 16곡을 모두 부르고 무대에서 내려온 우리는 서로 부둥켜 안았다. 관객들은 그때까지도 박수를 치고 있었다.

뮤지션들의 휴식을 위해 준비된 드레싱 룸으로 향했다. 준비한 홍보물을 가지고 다른 뮤지션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녔다. 로스앤젤레스의 코리아 타운에 산 적이 있었다는 '벡(Beck)', 2일 홍대 앞 롤링홀에서도 공연을 할 '줄리엣 루이스 밴드', 한국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도쿄 스카 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 등과 인사했다. 우리 밴드의 홍보물을 나눠주는 것이었지만 왠지 모를 애국심도 가슴에서 솟아났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마음이 이런 걸까.

페스티벌 내내 모르는 사람들끼리 인사를 나눴다. 경찰은 없었지만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쓰레기는 물론 담배꽁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각자 휴대용 재떨이를 가지고 다녀서다. 100점짜리 관중이었다. 위대한 음악과 음악 팬의 힘. 감동과 부러움이 섞인 감정을 안은 채 31일 저녁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이렇게 훌륭한 음악 페스티벌을 치러내길 기대하며….

*** 밴드 '오! 부라더스는' …

우리는 구식(?)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즐겨들었을 시절의 로큰롤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1997년 결성한 5인조 밴드, 외국 영화에나 나올 거리공연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유명세를 타면서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울랄라 시스터즈' '서프라이즈', 드라마 '떨리는 가슴' '슬픔이여 안녕' 등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정리=이경희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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