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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는 ISD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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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강수
사회부문 차장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지난 10일 타결됐다. 여기엔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investor-state dispute)’에 대한 합의도 들어가 있다. 그러나 2007년 개정된 한·중 투자보장협정(BIT)에 있던 내용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한다. 지금과 큰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이는 한·미 FTA가 2012년 3월 15일 발효하기 직전까지 상황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당시 협상의 최대 쟁점은 ISD 소송제 도입 여부였다. 야당은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라며 삭제를 주장했다. 투자자 개인이 감수해야 할 위험을 국가에 전가시키고 사법부의 판결도 중재신청 대상이 돼 사법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거였다. 정부 측은 우리 기업의 투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제도이며 중재기관이 사법부 판결을 심리하는 경우는 외국인 차별 등 협정상 의무 위반일 때라고 설명했다. 결국 여당 단독으로 FTA는 통과됐고 이명박 대통령은 ISD 재협상 추진을 약속했다.

 그런데 협정 발효 후 8개월 만인 2012년 11월 미국의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했다. 외환은행 매각을 보류하고 양도세를 징수한 것이 차별적 조치로 한·미 FTA 위반이라는 이유였다. 배상액 43억 달러를 요구했다. 그러자 일부 시민단체는 “ISD 소송 도입이 잘못됐다는 증거”라며 재협상 과정에서 독소조항을 걸러내라고 주장했다. 2년째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내 기업들이 외국 정부를 상대로 ISD 소송을 제기하거나 예비 절차를 진행 중인 것으로 잇따라 드러나면서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

 건설업체인 안성주택산업이 “지방 정부의 골프장 건설 지원 약속 파기로 손해 본 150억원대를 배상하라”며 중국 정부(시진핑 국가주석)를 상대로 제기한 ISD소송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더해 SK건설은 베트남 국영기업을 상대로 한 30억원대 국제중재 사건 진행 과정에서 국제법상 ‘사법정의의 부정(denial of justice)’에 따른 ISD소송 제기를 압박 수단으로 활용해 승소를 견인해냈다.

 어찌 보면 ISD 소송을 둘러싼 논란 역시 2008년 5월 광우병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산 소가 들어오기 전에 그걸 먹으면 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는 위협적인 보도가 나가면서 전 국민이 공포에 휩싸였다. 그때의 광분은 다 어디로 갔나. 결국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공포를 낳았다. 누군가는 그런 심리를 이용해 집단행동을 초래했다.

“정부가 제소를 당하면 방어에 막대한 비용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 쪽에서 보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수단이다. 이런 점에서 ISD 소송은 남용돼서는 안 되며 신중하게 검토해 제기해야 한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관련된 세 건의 ISD 소송 법률 대리인을 맡고 있는 국제중재 전문 김갑유(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의 말이다. ISD 소송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조강수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