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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방법은 산골(散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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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예나 지금이나 문자(文字)의 영향력이 큰 나라에서 문필업을 한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다. 반면에 문필업으로 예민해진 감각 때문에 온 국토가 문자투성이인 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면 눈과 머리가 쉽게 피곤해지기도 한다.

얼마 전에 서울 서부 외곽지역을 지나다가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또 다른 도로 옆면에 걸려 있는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운전을 하고 가다 짧은 순간에 본능적으로 눈이 간 것이라 자세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내용은 대략 '가장 좋은 장사 방법은 산골'이라는 것이었고 그 아래에 조금 작은 글씨로 현수막을 내건 서울시 어떤 기관의 명의가 적혀 있었다. 곧 서울 시내 구간으로 진입하자 길이 막히기 시작했고 앞차를 따라 가다 서다 하면서 잠깐 본 그 현수막의 내용을 원료로 하여 내 머릿속의 문자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산골(散骨)'이라는 단어 뒤에 달려 있는 한자는 생소했다. 한 글자씩 뜻을 따져 짐작하자면 못할 바는 아니었지만 당시 그 안건을 주관하던 내 머릿속 문자공장 공장장은 일단 한자를 제외하고 진도를 나가 보자고 결정했다. 그렇게 보면 그 문안의 내용인즉 '장사로 쉽게 성공하려면 산골에 가야 한다'는 뜻이 된다. 현수막을 내건 주체가 서울시이고 장소가 마침 서울시와 경기도의 경계지역이니 서울의 복잡하고 과밀한 환경을 감안하여 장사를 시작할 것이라면 산골의 자연 속에서, 이를테면 유기농 농사나 민박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는 내용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중간 결론을 내린 뒤에도 차는 계속 밀렸다. 어떻든 그 도로를 타고 가서 반대편의 또 다른 경기도의 산골에 사는 어느 거사(居士)를 찾아가는 길이었으므로 생각은 계속되었다. 사전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만의 추정, 아니 공정으로.

산골이라는 한자 단어의 의미가 말 그대로 '뼈를 흩는다'는 것이라면? 장사를 할 때는 그 자리에서 죽어 뼈가 흩어져도 좋다는 각오로 열심히 하라? 그게 친환경적이기도 한가? 원효대교를 지나고도 여전히 차는 밀렸다.

뼈를 흩는 사업이 전망이 좋다는 것일까? 왜 서울시에서 이런 종류의 사업을 권하는 것일까?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할 것이지만 하려 하지 않는 분야의 일이라서? 반포대교를 지나자 정체가 풀리기 시작했고 생각의 속도도 빨라졌다.

산골의 골에서 유추하면 여기서의 장사란 장례 절차를 말하는 것이다. 곧 장례를 지낼 때는 산골로 하는 게 가장 좋다는 것이 서울시의 판단이다. 화장과 관련된 절차일 것이고 그러므로 무덤의 수요는 많으면서 무덤 자리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어 다른 시도에 손을 벌려야 하는 서울시의 입장과 부합하는 말이다. 그런데 산골이라는 한자어가 지나치게 노골적(露骨的)이고 생경한 것이었다. 정말 다른 표현은 없었는가. 화장장이 승화원이 되고 묘지가 추모원으로 바뀌는데.

더 큰 문제는 산골은 한자로 표시해 놓고 장사는 한글로 그냥 두어 의미의 혼란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짧은 문장 안에 표현하려고 하는 바를 집어넣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장사가 장사(葬事)보다는 '상업'의 의미로 훨씬 더 많이 쓰이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장사라는 단어 뒤에 산골과 마찬가지로 한자를 같이 썼을 것이다. 늘 밀리는 도로 위에서 생각할 거리를 주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일반 사람에게 생소한 문자를 쓸 때 그게 합당한지 아닌지 잘 모르겠으면 문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혹은 아마추어 문필가 양성소인 인터넷 게시판에 한번 물어나 보시든지. 어디 장사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면서.

성석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