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불황의 극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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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출판계는 70년대말 이래 심각한 불황의 늪 속에 빠져 버렸다고 한다.
그 불황의 정도는 불모의 대지보다 더욱 메마른 고사의 상황이라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조차 있다.
그러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일반적 통념이라면 그것은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한나라의 정신적 기반이 도서이며 도서의 생산이야말로 나라의 정신적 축적을 대변한다는 것이 분명한 때문이다.
결국 출판이 감소되고 그 질 또한 보 잘 것 없는 사태는 나라의 정신적 기반의 취약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결코 잠시도 좌시 할 수 없다.
그 점에서 불황에 빠져 있는 우리 출판계의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 방치 한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 국가적 중대사다.
그것은 먼저 출판인 자신의 책임이기도 하다.
출판인들이 스스로 출판의 사회적 사명을 의식하고 양심적이고 성실하게 출판 사업에 힘을 모았다면 지금과 같은 불황은 없었으리란 가정도 한다.
출판인들이 출판 사업에서 축적한 지식과 자료를 출판 문화 발전에 되돌리지 않고 다른 사업에 전용함으로써 스스로 파산한 경우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또 불황을 타개한다고 선정적인 에로티시즘으로 독자를 끌려고 한 타락한 출판물의 난무 속에서도 그 요인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오락적인 독서도 인간 생활에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표피적이고 말초적인 자극제 이상의 쾌락을 주지 못하는 출판물이라면 그 해독은 보다 근본적일 수가 있다.
왜냐하면 독자의 감각과 신경에만 호소하는 도서는 인간의 가장 소중한 정신 기능인 사고력과 상상력의 확대를 정지시키고 아울러 사회 속에 생존하는 인간으로서의 도덕감을 마비시킴으로써 인간의 타락을 조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 출판계는 그 동안 엽기적이고 선정적인 출판물로해서 일부 이득을 취한 경우도 적지 않다. 또 겉만 요란하고 내용은 부실한 학습 참고 서류라든가 아동 도서 출판으로 돈을 번 경우도 없진 않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그런 부류의 출판을 건실한 양서 출판으로 보기는 어렵다.
인간 가치를 높이며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지적 축조물로서의 양서는 결코 충분히 공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반증으로서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일부 양서들이 이 불황 가운데서도 잘 팔리고 있다는 젓이다.
그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양서는 출판인의 양식과 저자의 노력뿐 아니라 독자의 호응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란 의미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그러나 양서를 많이 산출하는 사회가 되기엔 아직 많은 장애들이 가로 놓여 있는 것이 또 우리 현실이다.
좋은 책을 찾는 독서 인구의 저변 확대라는 문제도 있고, 좋은 필자의 양산이란 문제도 있다. 출판인의 양식은 더 말할 것이 없다.
좋은 독서층인 대학생들이 졸업 정원제의 굴레 속에서 풍부하고 폭넓은 독서를 외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 좋은 필자는 독서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상기된다.
그러니까 양서의 출판이 활발해지고 그에 따라 좋은 독서층이 형성되지 않고는 좋은 필자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현실도 이해된다.
이 악순환이 타개되지 않으면 우리의 출판 문화는 불모를 면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 타개를 위해 무엇보다 출판인들의 자각과 성실성이 필요하다.
출판인들이 국민의 정신 문화를 담당하고 있다는 긍지와 책임을 통감하고 양식과 지혜를 모아 양서 출판에 기여해야겠다.
그것은 반드시 도덕성을 높이자는 뜻만에 그치진 않는다. 출판인들이 이 시대 세계 출판 기술 향상에 부응하여 워드프로세서의 수용 등 출판·인쇄 체제 면의 개혁에도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누년의 과제인 도서 유통 기획의 개선 운영에도 획기적 발전을 기해야겠다. 이를 위한 정부 당국과 국민들의 적극적 관심이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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