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깊이보기: 인터넷 시대…책의 운명은?

읽기·쓰기 어떻게 변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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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책이 등장하고 나서 독서의 행태는 집중형 독서에서 분산형 독서로, 다시 검색형 독서로 변해 왔다. 집중형 독서는 성서(서양)나 사서오경(동양)을 비롯해 극히 제한된 양의 텍스트를 반복하며 숙독.음미하는 것이다. 그때엔 평생 10여 권의 책만 읽어도 교양(지식)층으로 행세할 수 있었다. '의심'하지 않고 반복해 읽고 기억해 다음 세대에 전해주는 '성스러운' 독서의 시대이기도 했다.

산업혁명.문예르네상스.프랑스혁명 등이 일어난 18세기에 이르러서야 날마다 갱신되는 대량의 텍스트를 그 자리에서 소비하고 다시 돌아보지 않는 분산형 독서로 바뀌었다. 여성 등 새로운 독자층이 유입되는 한편 대중 저널리즘의 시대가 열려 모두가 엄청난 양의 텍스트를 소비하게 됐다. 하지만 텍스트에 대한 엄정한 비판이 가해지기도 하는 '불경스러운' 독서의 시대였다.

디지털 혁명이 가져온 것은 검색형 독서다. 인간의 처리 능력을 훨씬 넘어선 분량의 텍스트를 마구 건너뛰며 읽는 것이다. 매체에서 매체로의 이동이 자유롭고 매체에 주어지는 각종 제약에서도 자유로워지면서 '읽는다'는 행위에 '텍스트 그 자체'를 실체적으로 상정해 조작도 가능케 됐다. 일종의 '편집' 행위가 '읽는' 행위에도 개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검색형 독서가 일반화하면서 책 또는 글의 제목, 나아가 본문까지 전보문처럼 의미 전달이 확실하고, 매우 자극적이며, 때로는 인간의 감정마저 실은, 그래서 어떻게든 선택받으려는 문장으로 바뀌고 있다. 글을 쓰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문장도 변화했다. 손으로 쓰던 시대에서 자판을 두드리던 시대로, 다시 엄지손가락으로 누르는 시대로 옮아가면서 매우 가벼운 문장이 선보였다. 구조의 복잡함 같은 것은 사라지고 매우 한정된 문체, 짧고 간결한 문장, 기묘한 기호의 범람, 빠른 템포의 이야기 구조로 구성된 글들이 대중의 선택을 받고 있다.

아직까지는 이와 같은 변화가 인쇄된 종이를 묶어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읽는 것이라는 책의 정의까지는 바꾸지 못했지만 서지정보의 데이터 베이스화는 확실하게 이뤄내 인터넷서점.도서관 등에서 인간이 책과 사귀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읽고 쓰는 행위의 변화가 결국 책의 정의마저 바꾸어버리는 일이 실제로 벌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