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 바꾼다고 역사 바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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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의 유력 일간지 아사히(조일)신문은 27일『시험대에 오른 역사에의 자세』제하의 사설에서『일본 문부성은 고교 교과서의 내용을 고쳐 일본행위의 가학성을 호도하려 하고있다』고 지적하면서『지금 한국과 중공에서 일고 있는 비판의 물결은 외교적 차원의 정치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다음은 이 사실의 전문이다.
【동경=신성순특파원】
문부성이 실시한 고교용 익사교과서의 검정내용에 대해 한국·중공·북한 등으로부터 심한 비판이 일고 있다.
명치이후의 일본이 중국대륙이나 한반도에서 저지른 행위에 대해「검정」으로 내용을 고쳐 썼기 때문이다.
중국에의「침략」을「진출」로, 한국인의 일본「강제연행」을「국민징용령의 적용」으로 고쳐 쓴 것처럼 일본행위의 가학성을 모호하게 하는 의도로밖에 생각될 수 없다.
이에 대해『타국침략의 역사를 왜곡시켜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것』이라고 이웃 나라에서 반발하고 있다.
특히 중공정부는 26일 북경주재「와따나베」(도변행치) 공사를 외무성으로 불러『교과서 검정에 의한 중일전쟁의 기재내용 개조는 일-중공 공동성명, 일-중공 평화우호조약의 정신에 반한다』고 공식으로 항의했다.
한국에서도 신문과 방송을 중심으로 높아진 반발이 정치문제로 바뀌어가고 있어 일본의 대응에 따라 외교차원의 합의로 발전할지도 모른다.
정부도 상황의 악화에 머리를 싸매고 있으나 현재로서는『교과서 검정은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적절한 교육적 배려를 하고있다』는 태도를 춰하고 있을 뿐이다.
또 하나 내부적으로 일부각료의『경우에 따라서는 내정간섭이 된다』는 발언은 오히려 반발만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일본에는 일본의 주권이 있으므로 의부에서 얘기하는 대로 그대로 뒤따를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문제로 그 같은 반발적 자세를 취하는 것은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도 옳지 않다.
이들 나라들에서는 일본이 일으킨 행위가 아직도 역사적 사실로 살아남아 있고 말을 바꾼다고 없어질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사실을 사실로 인정, 냉정히 반성함으로써 이들 국가들과의 외교관계와 우호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중공정부가『중일 공동성명과 중일 평화우호조약에 위배된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은 이 뜻과 맥이 통한다.
「교육은 내정문제」라고 말하고 오만한 자세를 취해서는 과거 일본의 지배아래 놓여있던 아시아 전지역의 여러 나라에까지 비난과 항의의 소리가 퍼질 것이 틀림없다.
특히 일본에는 7O만 명의 재일 한국인과 북한 인이 있으며 그들 자녀의 대부분이 일본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부모와 조부모가 어째서 일본에 왔는가 하는 사실관계는 이 아이들에게는 아무렇게나 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사실을 사실로서 인식하는가의 문제는 이들 외국과의 관계이전에 우선 교육의 본질에 관련되는 문제로서 중요하다.
다음세대의 일본인이 과거에 대해 틀린 지식을 가진 인간으로 키워진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참을 수 없는 국민적 고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잘못 역시 과학적 진실에서 멀려 떨어진 인식을 강제한 교육 때문에 생긴 것이다.
다시 이 같은 교육을 자신들의 자식들에게 시키지 말라는 바람이 국민간에 뿌리를 내리고있다.
수학이나 물리 등과는 달라서 역사를 비롯한 사회과학의 분야에서는 학문적으로「설」이 나뉘어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편파시정」의 이름 아래 최근 진행되고 있는 사회교과서 검정의 행태는 이 같은 바람을 짓밟는 것 같은 강인함이 느껴지고 있다.
외국으로부터 비난받고있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교과서에서 어떤 용어를 쓰느냐 하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고 급속한 군사비의 증액 등 정부가 끌고 가는 방향의 위구를 그들 여러 나라의 사람들 이상으로 강하게 느끼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이문제로 경부가 국제적인 경의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성실한 태도를 취하도록 강력히 촉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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