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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영4년반… 보고 느낀 노제국의 명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타워 오브 런던」성에는 왕권의 유래를 한눈에 알아보도록 전시장을 배열해 놓았다. 한건물에는 주먹만한 다이어먼드가 박힌 왕관들과 각종보석으로 장식된 보검,황금 도금을 입힌 예복, 그리고 왕권을 상징하는 각종호화로운 장식들이 어둠속에 비치는 날카로운 조명아래 광채를 발하고 있다.
걸대권력의 이 눈부신 진열실에서 나온 방문객은 바로 그 뒤에있는 보이어성으로 안내되는대 그안에는 입구부티 차가운 살기가 풍겨 나온다. 여기에는 왕권에 도전한 사람을 처형한 단두대와 도끼가 있고 범법자를 고문하던 형틀이 진열되어 있다. 심지어 처형된 범법자를 길거리에 전시하는데 사용된 무쇠로된 시체걸이까지 있다.
이 두 전시장은 왕권의 영광과 이것을 유지하기 의해서 필요했던 폭력을 나란히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영국이 향유하고 있는 의회민주주의의 의미를 일깨우겠다는 의도를 엿보이게 한다.
유럽에는 아직 7개나라에서 왕실이 건재하고 있지만 영국왕실만큼 19세기의 휘황찬란한 왕권의 상징들을 그대로 보존하고있는 나라는 없다. 「찰즈」황태자의 결혼식이나 의회개회식 또는 의국국빈들의 예방이 있을 때는 아직도 여왕을 비롯한 왕족물은 「타워 오브 런던」에 전시된것과 같은 왕관을 쓰고 황금마차를 타고 거리를 활보한다. 다른나라의 왕실이 모두 서민화 되어 의식적 차림을 줄이려 하고있는데도 영국에서는 조금도 변화가 없다.
영국왕실이 건재해있는 비결은 왕권이 갖는 권력적 축면을 모두 포기하고 상징적인 권위만을 취한데있다. 왕관만 갖고 형틀은 버린것이 장수의 비결인 것이다.
19세기의 유명한 영국 헌법학자「배지호트」에 따르면 정권은 원래 위염적 기능과 보항적 기능으로 구분되는데 영국왕실의 경우는 위엄적 기능만 갖고 실행적 기능은 관리들에게 넘긴 결과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저항을 유발하지 않았다고 한다.
69년 찰즈 왕자가 황태자로 붕해지기 직전 왕실은 BBC 방송제작팀에 역사상 저음으로 버킹검궁전의 내부생활을 보여주는 TV프로를 제작하도록 허용했다. 이 프로에서 해설자는 왕실의 기능을 이렇게 설명했다.
『왕실의 힘은 여왕이 잡고있는 권력에서 나오는것이 아니고 다른사람이 권력을 휘두르는것을 막는 기능에 있다. 왕실은 독재에 대한 최후의 방어선이다』
왕권곤수세이 훵행하던 시대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지만 오늘의 영국에서는 이 설명이 사실인 것같다. 학자들의 해석에도 불구하고 왕실폐지를 주장하는 공화파도 물론있다. 「빅토리아」여왕은 6번이나저격당했고 한번은 몽둥이에 맞아 실신한적도 있다. 「엘리자베드」여왕은 지방 시찰중 부근에서 폭탄이 터진적이 있고 지난해 생일사열식에서도 젊은 청년이 여왕에 대해 6발의 공포를 쏜일이 있다.「찰즈」황태자 결혼식때는 『귀큰 친구(찰즈)장가 가는걸 갖고 떠들썩한것 보기싫은 사람들 모두 공화국(에이례)에 가서 반영노래나 실컷 부르자』는 운동도 벌어졌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계층을 막론하고 여왕과 왕주을 아낀다.
서민들에게 있어서 왕실의 호화로운 행차는 과거 대영체국이 번성했던 시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같다. 왕실에서도 국민들이 자기들에게거는 그런 기대에 어굿나지 않게행동하기위해 무던히 노력하고있다.
70년부더 여왕은 관례를 깨뜨리고 시민들 사이에 나타나 인사를 받기 시작했다. 여왕모후를 비롯한 모든 왕족은 바쁘게 자선모임·건축가공식등에 잠석하여 국민과의 거리를 접근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때론 한펀으로 정치나 사회적논란이 일고 있는 문제에 대해 의견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여왕앞에서는 다른 사람도 정치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로 되어있다. 여왕은 아직 한번도 기자회견을 한적이 없다.
제3세계의 어느 방문자는「우리도 왕실이 있었으면 정치가 안정될텐데』라고 아쉬워하는걸 들었다. 그러나 결과만을 놓고 왕제를 부러워하기전에 왕권으로부터 형틀을 빼앗은 영국민중의 오랜 역사적 투쟁과 또 빈권을 모두 잃고도 상징적 권위를 계속 행사할수 있게 처신해온 왕족, 그리고 그걸 계속 아끼는 영국국민들의 성향등을 다 갖추기 전에는 왕실이 안정의 요소라고 단정하는 것은 경솔하기 짝이없는 생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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