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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 콤플렉스|무슨수를 써서라도 남을 딛고 살아야 직성이 풀리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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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TV 사극엔 고을 윈님이 가끔 나타난다. 모든 사람이 마당에 엎드려 굽실거리고 명령일하에 온고을이 들썩거린다. 정승대감이 아니라도 그자리 한번쯤 앉아보고 싶은 마음이야 누군둘 안나랴. 선망의 적이 아닐수 없다. 우리 의식 깊이 박혀온 관료 숭상이 이해가 감직하다.
하찮은 벼술자리를 놓고도 우린 결사적이었다. 권좌에만 앉으면 부귀영화는 Ep놓은 당상이나 다름없는게 우리 역사였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의 염원은 세대룰 이어온 숙원이 되어버린 것이다.
요즈음에야 그런 자리가 없어지기는 했지만 우리 잠재의식 속엔 대감이나 윈님의식이 떠나지 않고 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사람위에 군림해야겠다는 강박중에 시달리고 있다. 권세가 없으면 돈을 벌어서라도 대대로 맺혀온 숙원을 풀어야했다.
모든 사람이 자기앞에 굽실거리는 꼴을 봐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처절한 의식이 짙게깔려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어쩌다 벼락부자라도 되어보라. 목에 힘부터 주게 된다. 영의정 대감이나 된듯한 착각에 빠진다. 말투부터가 호령조다. 술 한잔을 마셔도 거드름 일색이다.법을 줘도 꼭 뿌려야만 직성이 풀린다.
엎드려 줍는 그 아가씨의 싸늘한 웃음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야 알길이 없다. 봉사해준 사람에게 감사는 커녕 하인취급이다. 서양식으로라면 이야말로 주객의 전도다. 정말이지 꼴불견이라기보다 제왕 환상에 젖은 과대망상환자다.
어쨌든 자기만은 특별대접을 받아야 한다. 특권층이니 특수층이니하는 「특」자가 많은 것도 이런 과대망상의 소산이다. 냉면 한그릇을 시켜도 특제가 등장하고 주문도 특별주문이다. 이렇게 「특」자가 유행인 것도 우리사회엔 원님 환상에 젖은 사람이 많다는 증거다.
졸도 서지 않는다. 극장표도 그렇고 기차표를 끊어도 줄서길 부끄러이 여긴다. 질서의식이 없어서도 아니다.
누굴 시키든가 아니면 암표를 끊는 한이 있더라도 즐을 서선 안된다. 대감 위신에 관한문제다. 여느 사람처럼 보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음악회엘가도 초대장을 쥐어야한다. 물론 표 살돈이 아까와서 그러는건 아니다. 입장권보다 몇배의 돈을 들이는 한이 있더라도 초대장이라야 원님 체통이 서기때문이다. 남들이 다 불편한 법을 지킨다고 바둥거릴 때 내 보란듯이 비켜 달리는 저가슴 속엔 일말의 쾌재도 찌르르 흐를게다. 나만은 예외여야 한다는 이런 어중이들로 인해 우리의 하루 생활은 참 불쾌할 때가 많다. 민주주의라는 거창한 이야기전에 우선 불쾌해서견딜수 없다.
처절할 정도의 이러한 특수.
예외의식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대감에의 환상이라고 했지만 사질은 하인 콤플렉스에서 출발한다. 우월감을 과시하고픈 욕망이 클수록 그만큼 열등감이 많다는 증거다. 하인 콤플렉스가 강할수록 사람위에 군림하고픈 욕망은 더 강하게 작용한다. 조상대대로 짓눌려 살아온 한을 푸는 의미에서도 더욱 그래야 한다. 사실이지 지금도 전통적인 명문가 출신인사람들에겐 이런 허세는 찾아볼수 없다. 법도를 지키고 분수에 따라 그저 겸손할 뿐이지 거만스럽거나 요란스럽지가 않다.
하지만 대대로 하인 근성에서 벗이나지 못한 사람에겐 반작용의 증상은 당연한 결과다. 사람을 멸시하고 손아래 사람을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도덕적 새디즘이 횡행하는 것도 이 하인 콤플렉스에서 못벗어난 증거다. 이제 나도 한푼 벌었으니 재왕처럼군립하여 사무친 원한을 풀어 마치 원수라도 갚는기분이 된다. 내심 승리의 쾌재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스스로를 속박하는 마음의 노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은 이런 어중이들의 하인 콤플렉스를 잘 보상해주는 진짜 하인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엔 많다는 것이다. 외국에 살다온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돈만 있으면 한국만큼 살기좋은 나라가 없다고 말이다. 흔히 듣는일이다. 자가용운전사가 문을 열어주고, 가정부에 그리고 아파트엔 사실 경찰이, 거기다 담배 한갑, 맥주 한병까지 배달해준다. 물론 배달료도 없다. 몇푼만 주면 그 모시는 지극정성 또한 대한하다. 연방 굽실거리고 말만 떨어지면 가히 죽는 시늉까지 할 각오가 돼있다.
제왕처럼 살고 싶으면 한국에 가라고 한 이 친구의 익살이 불쾌하긴 했지만 현실이 그런걸 어떡하랴. 사실이지 외국에선 백만장자도 이런 생활은 못한다. 하인을 부릴수야 있지만 우리처럼 정성스럽지가 못하다. 아니 그들은 오히려 당당하다. 비록 남의 밑에 살아도 비굴하거나 굽실거리질 않는다. 직업에의 긍지와 품위를 잃지 않는게 서양의 하인이다. 그런데 왜 우린 이게 안될까? 하인도 아니면서 하인처럼 굽실거려야 하는게 우리다. 하지만 사람마음은 다 같다. 인간적 굴육감을 속으로 참고 썩여야하는 그 가슴은 따갑도록 아플 것이다.
누가 고개룰 숙여 굽실거리길 좋아할 것인가. 자존심도 상할게다. 아부를 해야 목즐이 붙어난다고 생각하는 그 모멸감은 자신에의 분노, 주인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슴 깊이 응어리질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제2의 제왕망상증환자가 탄생한다. 이런 악순환이 거듭될 때 우리사회의 앞날은 어떻게 될것인가? 민주의식도 평등의식도 성장할 소지가 없다.
우린 지금 주인도 하인도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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