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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로비' 한전KDN 조직적 비리 적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한전KDN의 조직적 비리가 경찰에 적발됐다. 직원 1200명 규모인 이 회사는 출장비를 허위로 부풀려 빼돌리고, 회사 차원에서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입법 로비까지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법 개정을 하려는 목적으로 국회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한전KDN 김모(58) 전 대표 등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18일 밝혔다. 경찰은 또 관련 업체로부터 사업수주 청탁을 받고 1100만원을 받은 혐의로 한전KDN 김모(60·구속) 전 본부장을 입건했다. 이와 함께 출장비를 허위로 부풀려 개인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상납한 혐의(사기)로 김모(41) 차장 등 직원 38명도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은 지난 6개월간 한전KDN의 운영 비리에 대해 집중 수사를 벌여왔다. 수사 결과 한전KDN은 각종 비리에 오염된 ‘비리 종합 백화점’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한전KDN는 조직적 차원에서 국회의원을 상대로 한 입법 로비를 시도했다. 한전KDN 측은 2012년 11월 국회에서 소프트웨어사업에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하는 내용의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법안'이 발의되자 회의를 거쳐 법안 관련 국회의원 4명을 지정해 후원금을 단체로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김 전 본부장 등으로 구성된 '소프트웨어사업 대처팀'은 직접 국회의원실을 방문해 후원금을 기부한 사실을 통보하고, 개정법안에서 '공공기관은 제외한다'는 조문을 넣은 법률안을 전달하기도 했다.

당시 한전KDN 직원 568명이 1인당 약 10만원씩 이들 국회의원 4명에게 총 5400만원 상당을 집중 기부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특히 개정법안을 주도한 한 야당 의원에게 약 1800만원 상당의 후원금이 집중된 것으로 장부에 나와있다"며 "이 의원이 2013년 6월 출판기념회를 열자 한전KDN 측이 책 300권(900만원 상당)을 구입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제 한전KDN 측이 국회의원 4명에게 후원금 등을 집중적으로 기부한 뒤 개정법안에 '공공기관 제외'라는 조문이 들어가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은 조만간 해당 국회의원실 관계자를 불러 후원금을 받은 경위와 입법 과정 등에 대해 조사할 방침이다.

한전KDN의 운영 비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이 회사 임직원 358명은 2012년부터 올 5월까지 출장을 가지 않고도 간 것처럼 허위 서류를 만들어 11억2000여 만원 상당의 가짜 출장비를 받아냈다. 이 돈을 개인용으로 쓰거나 한 번에 100만원씩 상사에게 상납해 회식비 등으로 사용했다. 김 전 대표의 경우 자신의 지인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한 뒤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도 참석한 것처럼 꾸며 1년간 2000만원을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일부 임원은 관련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기도 했다. 김 전 본부장은 지난해 11월 관련 업체 대표 조모(61)씨로부터 사업수주를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11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앞서 김 전 본부장은 특정 전기통신공사업체에 발주 공사를 몰아주는 대가로 금품과 향응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검찰에 구속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압수한 한전KDN의 후원금 기부 내역과 회의자료 등을 토대로 국회의원 4명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계속 수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강현 기자
fon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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