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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프랑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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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상거래 등 경제활동이나 일상생활에서 현금보다 크레디트카드·수표사용이 보편화 돼있는 프랑스의 경우 거의 전국민이 은행구좌를 갖고 있어 실명제가 정착돼 있다. 그러나 예금패턴이나 목적·성격은 다소 색다르다.
우선 예금의 목적부터 다르다.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으로 저축의 필요성은 크게 느끼지 않는 탓도 있지만 일반적으로「저축하지 않는」풍조 때문에 예금의 목적도 저축을 통한 재산증식보다 생활의 합리화·간편화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된다.
그래서 예금제도도 대개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프랑스의 예금제도는 무이자 일반예금과 이자부 예금으로 대별된다. 이자가 붙지 않는 일반예금은 수표예금과 당좌예금이다.
수표예금은 예치금의 한도나 기간에 제한이 없고 예금주의 자격도 아무런 규제가 없어 성인이면 누구나 실명으로 구좌를 열 수 있다. 16세미만의 미성년자도 수표책 미교부 조건으로 구좌개설이 가능하다. 당좌예금은 기업가 또는 상인이 사업상 필요에 따라 구좌를 여나 예금주의 자격은 기업에 한정돼있고 수표예금과 달라 대월이 가능하다.
이자가 지급되는 이른바 저축성 예금은 종류에 따라 각각 년 3·2∼7·5%의 이자가 붙지만 특별한 예금을 제의하곤 연 38%의 이자소득세가 종합 과세되고 있다. 따라서 모두 실명예금이 된다.
예금이자엔 38%의 소득세가 부과된다.
프랑스의 예금제도상으로는 내 집 마련이나 피고용자의 독립사업 지원만을 위해 이자소득세가 면세될 뿐 별도로 학생이나 소액 예금주에 대한 이자소독 면세혜택은 없다.
예금제도상 어떤 종류의 예금이건 모든 예금주가 실명을 밝히게 돼있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누구나 은행구좌 개설 신청 때는 신분증을 반드시 제시하게 돼있고 은행은 구좌개설 전에 개설신청 때 제시받은 신분증에 나타난 주소지로 본인여부를 조회하게 돼있어 무기명이나 가명예금은 윈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프랑스 사람들이 은행예금을 저축이나 재산증식방법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일반적인 저축외면 풍조말고도 이 같은 이자소득에 대한 고율의 소득세 부과에 적지 않은 원인이 있는 것 같다.
결국 은행예금은 생활의 편의를 위한 것이며 저축으로 재산을 불려보겠다고 은행에 돈을 맡기는 사람은 적은 편이다.
이자소득의 면세혜택이 보장된 특수예금도 예금한도액이 낮게 책정돼 있어 웬만한 경우 투자방법으로는 환영받지 못하고있는 실정이다.
은행에 예금하는 사람을「바보」라고 흔히 말하듯 저축성예금이 외면 당하고 있는 현상은 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스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금을 제1의 투자대상으로 여겨왔던 탓에도 있다.
거부나 중산층, 가난한 사람 할 것 없이 프랑스인 들은 돈을 들고 은행으로 가기보다는 금을 사 모으는데 더 매력을 느끼고있다. 물리적인 위험(분실)만 피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안전한 투자가 없으며 이른바「이자소득세」도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일반 가정의 금 보유량이 약 5t으로 가구당 2만 4천 프랑(약 3백만원) 어치가 각자의 장롱 깊숙이 감춰져 있는 셈이라는 비공식집계가 나와 있다.
금과 함께 부동산·고화폐·고미술품·포도주 등도 투자대상의 상위권에 든다. 5년 만기의 국채를 사 모으거나 주식매입도 투자의 한 방법으로 꼽히고 있으나 주식인구가 극히 제한돼있어 아직은 대중화 돼있지 못하다.
또 예금의 실명제도로 수표를 통한 정상적인 거래에선 탈세가 거의 불가능하다.
수표의 추적으로 탈세사실이 손쉽게 들어 나기 때문이다. 다만 현금거래 때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는 방법 등으로 탈세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시중상인중 일부가 현금으로 물건을 사준다면 가격을 대폭 할인해주겠다고 수표 아닌 현금거래를 유도, 탈세하는 일이 있으나 그나마 세무당국의 끈질긴 추적을 피하기는 무척 어렵다.
「루이」왕조이래 프랑스의 세무관리가 세계 어느 나라의 세무관리보다도 유능(?) 하다는 평가를 받고있는 만큼「잔챙이」외에는 거의 들통나게 마련이다.
프랑스에는 소위「사채시장」이란 것도 없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얼마든지 일정범위 안의 은행융자가 가능하고 은행문턱도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 서민이고, 기업가고 모두 필요한 돈을 은행으로부터 대부 받아 사용한다.
심지어 바캉스 자금도 은행에서 빌려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이 꾸어가라고 하소연할 정도다.
대출이자는 매일 국가신용위원회가 결정해 발표하며 대충 연13∼15%선이다.
서민층의「급전」이란 대개 불의의 사고에 따른 의료비 마련이라든가, 실직으로 인한 생계비마련 등이고 보면 더더욱 급전융통의 필요성이 없다. 급전이 필요한 모든 경우가 어느 만큼은 사회보장제도로 커버되고 있는 까닭이다. <끝>
【파리=주원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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