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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 병사들의 잡초 뽑기는 민간용역으로 대체될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과연 전방 병사들은 여름에 잡초 뽑고, 겨울에 눈 치우는 사역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12일 국회 국방위원회는 최전방 일반전초(GOP) 부대의 잡초 제거와 제설 작업 등을 민간 회사에 용역을 주기로 했다. 관련 예산 305억원도 의결했다. 부대 시설관리와 주변 정리 작업을 민간에 넘기게 된 곳은 철책을 지키는 육군 11개 사단, 전방 곳곳에 탄약을 보관하는 탄약창 9곳, 해병대 2사단 등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사천리로 내년부터 시행될 듯 하지만 속사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국방위 내부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 실제로 12일 국방위 회의에서도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 등은 끝까지 반대했다. 한 의원은 “국방부의 발상이 잘못됐다”며 국회 회의록에도 반대 기록을 남겨달라고 요청했다. 여기에 17일 열린 국회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 혁신 특별위원회 회의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 백군기 의원도 “군대 생활을 한 사람들은 다 반대한다. (청소 등을 용역에 맡기는 데 대해) 군대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말도 있다”며 찬반 논란에 불을 붙였다.

한 의원은 육군 5군단장을 지낸 3성장군 출신이다. 백 의원도 마찬가지. 3군사령관을 거친 4성장군 출신이다. 여야를 떠나 군 출신 의원들이 반대하는 모양새가 됐다.

반면 비(非)군인출신 새정치민주연합 안규백 의원은 강력한 찬성론자다. 당초 전방 2개 사단 정도로 시범사업을 벌이자고 했지만 안 의원은 “전방 사단 전체로 확대하자”고 주장해 예산을 확대시켰다.

부대관리 민간용역 예산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의 예산심사를 남겨둔 상황에서 국방위원들의 찬반 입장을 들어봤다.

○한기호 의원
-최전방 병사들이 수행하는 각종 사역을 민간에 돌리는 방안에 왜 반대하나?
=부대 관리 분야에 민간인 용역을 쓰는 구상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내용은 문제가 있다. 국방부의 계획을 보면 대대당 5명을 배치하는데 시설관리 1명, 청소관리 2명, 환경관리 2명씩 전 군에 확대하겠다고 한다. 청소나 잡초제거까지 민간에 넘기겠다는 발상이 맞는거냐?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거다.

-어떤 점이 문제인가?
=민간에 넘긴다고 치자. 그러면 GP(경계초소)는 어떻게 할 건가. 그곳은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군사구역이다. 그런데 잡초를 뽑기 위해, 혹은 청소를 하기 위해 일반 용역회사들이 그곳을 드나들어야 한다. 말이 안 된다. 결국 GP에서는 여전히 병사들이 잡초를 뽑고, 그보다 후방에 있는 병사들은 용역을 쓰며 편하게 지내게 된다.

-그러면 GP까지 제한적으로 허용할 수는 없을까.
= 나도 전방에서 군 생활을 오래 해봤다. 전방 사단의 애로사항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저런 방안이 꼭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군 생활이라는 게 반드시 총을 잡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단체 생활을 통해서 다양한 해결능력도 키워야 한다. 군사 훈련 외 모든 것을 민간에 넘긴다고 치자. 나중에 정말 전쟁이 난다면 진지 구축은 어떻게 하겠나. 군대에 왔으면 화장실도 청소해보고, 삽들고 나가서 땅도 파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도 문제다.

-그러면 계획안이 어떻게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시설관리에 집중해야 한다. 전방 부대들의 시설물은 대부분 수 십년 전에 구축됐기 때문에 녹슬고 낡았다. 고장도 많다. 제대로 고쳐야 하는데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 전기시설 보수하고, 보일러나 세탁기 망가지면 고치고, 이런 것들을 전문인력에 맡겨야 한다. 지금처럼 주먹구구식으로 할 게 아니라 최소 기능사 자격증을 갖춘 사람들에게 맡기자는 것이다. 부모들이 얘기한다고 해도 어느 것이 필요하고 안 필요한지 순서를 생각해야지 지금처럼 진행해서는 곤란하다.

○안규백 의원

-당초 육군에서 냈던 요청안보다 더 확대시키자고 주장해서 관철시켰다.
=일단 2개 사단만 시범적으로 하자고 한건데, 그렇게 했다가는 일회성으로 종료될 수 있다. 그래서 이왕 실시할 거면 전방 모든 부대에 실시해야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야 이 사업이 지속될 수 있다.

-국방위 일부 의원들은 반대하고 있다.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근거가 뭔가.
=첫번째는 장병들의 복지 증진이고 두번째는 전투력 강화 차원이다. 우리가 군대에 보내는 이유는 외부의 도발 가능성을 경계하고 이에 맞설 훈련을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장성 누구 한 명 온다고 하면 전 부대원들이 나서서 잡초 뽑고, 걸레질하는 사역에 동원되기도 한다. 눈이 오면 하루종일 눈만 치운다. 그러다보니 2년이라는 시간동안 국방의 의무를 다 했는데도 자부심이나 명예를 갖지 못하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제 시대가 변했다. 훈련 시간에는 훈련을 받고 나머지는 개인 시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복무 생활의 스트레스도 덜 받고 보람도 생긴다.

-GP 등 민간인이 들어갈 수 없는 병사들이 오히려 피해를 입을 거라는 우려도 있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모든 영역을 전부 민간인에게 맡기기 어려운 측면이 분명 있다. 하지만 그때문에 민간 용역 자체를 무효화할 수는 없다.

-이때문에 세금이 300억원 가까이 더 투입된다는 비판도 있다.
=그 돈은 다 민간경제로 전환되는 돈이다. 민간용역에 맡기면 군 부대의 지리적 특성상 대체로 지역에서 이를 맡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군 부대가 입주해 개발 제한 등 피해를 보고 있는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냥 낭비하는 돈이 아니다.

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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