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후버는 48년 동안이나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가 대통령 8명을 손아귀에 넣고 주무른 비결은 도청이었다. 사생활 약점이 잡힌 대통령들은 꼼짝하지 못했다. 도청은 대통령 집무실 전화까지 가리지 않았다. 두려움을 느낀 케네디와 닉슨 대통령이 그를 해임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후버는 백악관 침실까지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잠옷 바람의 대통령과 마주 앉은 일화를 자랑삼아 떠벌리곤 했다.
후버에겐 당시 흑인 인권운동 지도자인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눈엣가시였다. 도청망을 총동원한 끝에 킹 목사의 외도현장을 낚아채는 데 성공했다. 킹 목사 부인을 불러 도청한 녹음 테이프까지 들려주었다. 그러나 몰락한 쪽은 킹 목사가 아니라 후버였다. 도청 사실 공개는 미 국민이 FBI를 혐오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도청(eavesdropping)은 원래 처마 끝 낙숫물 소리까지 엿듣는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 사회는 서로 의심하고 감시하는 불신의 사회다. 지옥이 따로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 비밀을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최근 국가정보기관에서 흘러나온 이른바 X파일 파문이 거세다. 국가안보를 지키고 간첩을 잡으라는 요원들이 엉뚱한 곳에 도청기를 꽂은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돈 받고 도청 테이프를 팔아먹기까지 했다고 한다. 참고로, 천주교 사제는 고해성사의 비밀을 철저히 지킨다. 고해성사 양식은 숱하게 변천했지만 여태 고해의 비밀을 누설한 사제는 없었다. 천주교 2000년 역사를 지탱해 온 비결의 하나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