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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테러는 전통 문명의 반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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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새뮤얼 헌팅턴이 갈파했던 '문명 간의 전쟁'이 공간이 아니라 시간 위에서 벌어지고 있다.

런던의 자폭 테러범이나 이라크의 무장 세력들은 자신들이 서구 문명에 복수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워싱턴과 런던, 그리고 텔아비브의 지도자들은 새 이슬람 제국을 세우겠다는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의 야망을 자신들이 막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틀렸다.

문명 간 전쟁은 현대 문명과 전통 문명 간의 충돌이다. 전통 문명, 전통 세계란 서구인들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살고 있는 문명과 세계를 말한다. 문명 간 전쟁은 현대 문명의 승리로 판가름났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서방에 대한 테러 공격은 현대 사회가 완승을 한 전쟁에 대한 처절하고 운명적인 반응이다. 현대 문명은 전통 문명의 가치, 희망, 그리고 모든 생활 방식을 파괴했다"고 말한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로저 코헨이 지적했듯 서구인들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더 풍요롭고 자유로운 세기를 자신들이 만들어 내고 있다고 믿는다. 현대 세계는 전통 세계를 과거의 불명예스러운 잔재로 간주한다. 그래서 전통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 진보라고 믿는다. 한데 여기서 말하는 진보는 어디를 향한 진보일까? 우리는 여기서 유토피아라는 문제와 맞닥뜨린다. 유토피아는 가치 있는 인생에 주어지는 사후의 보상이다. 종교적 구원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대 문명은 풍요로움을 종교적 구원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제 인생의 목표는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진보가 됐다.

현대적 '유토피아주의'를 보여 주는 전형적인 정치적 사례를 하나 들어 보자. 월 스트리트는 갓 출범한 클린턴 행정부에 국제금융시장의 자유화를 권했다. 미국 행정부는 물론 미국 내 모든 기업과 금융기관, 그리고 서유럽의 모든 경제 주체들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탈규제와 세계화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우선 전통적인 무역 형태를 유지해 온 자급 경제권이 무너졌다. 이들과 수천 년을 함께해 온 문화적 배경도 사라졌다.

서구인은 이들이 본 피해에 신경 쓰지 않는다. 서구는 진보와 발전에만 집중했다. '자급자족 사회의 붕괴는 피할 수 없다. 이들을 현대적 사회로 끌어당기고, 진보의 길 위로 올려놓는 일이 필요할 뿐'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라크 침공은 새로운 중동을 건설하고, 새 중동을 '보다 나은 세계'를 향한 길 위로 올려놓기 위해 불가피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한데 '보다 나은 세계'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전통 세계는 전통 종교에 의해 똘똘 뭉쳐 있다. 따라서 현대 서구는 사실상 전통적 종교를 상대로 전쟁을 치르는 셈이다. 그렇다면 자신들의 전통적 종교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서구에 반격을 가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런던.파리.마드리드의 내부나 그 주변의 '게토'는 현대 세계와 전통 세계의 경계 지역이다. 만일 이곳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이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고 판단한 세계를 공격한다면 그게 과연 놀라운 일일까?

현대 서구 문명은 서구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다. 아무도 서구인에게 이방의 사고를 강요한 적이 없다. 현대 세계는 서구인들이 창조했고, 서구인들이 속한 세상이다. 그러나 서구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서방의 사고를 주입시키고 있다. 서구인들은 말한다. "이것이 발전이다. 우리의 발전은 너의 불안정이며, 너의 문명의 파괴다. 우리의 발전은 문화적으로 본류와 멀어진, 탈(脫)인종적인 수백만의 인간을 만들어 내는 일이기도 하다. 이들 인간은 그들 자신의 과거로부터 분리돼 물질적인 윤리와 완벽하게 하나가 될 수 있는 인간이다."

이것에 대한 반응이 폭력이라면 그게 놀랄 일이겠는가.

윌리엄 파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칼럼니스트
정리=진세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