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미 소사, 과연 '일그러진 영웅'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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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미국 세인트루이스 김용철 특파원] 새미 소사(37·볼티모어 오리올스)가 지난 19일(한국시간) 통산 584호 홈런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통산 홈런 6위에 등극했다. 하지만 코르크 방망이 사건, 약물 복용 의심, 지난해 마지막 경기에서의 조기 귀가 등으로 이미 언론의 비난을 받을대로 받은 소사의 대기록은 그 업적에 비해 상당히 과소평가되고 있다. 특히 올해의 부진으로 인해 그동안의 기록이 전적으로 약물의 도움이었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소사는 '일그러진 영웅'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과연 소사가 그토록 비난받아 마땅하고 그가 이룩한 업적이 쉽게 평가절하 될만한 기록일까. 메이저리그 역사상 수없이 훌륭한 홈런 타자들이 있었지만, 소사는 500홈런 이상을 기록한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선수이다. 배리 본즈(40·샌프란시스코) 켄 그리피 주니어(35·신시내티) 마크 맥과이어(전 세인트루이스) 등과 동시대를 이끈 홈런 타자이지만, 이들과는 성장 배경이나 야구의 시작이 너무나도 달랐다. 이들이 거액의 계약금을 받으며 1라운드에서 지명받은 것에 비해 소사는 단 3500달러를 받고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했다. 또한 비교적 여유있는 가정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자란 다른 선수들과 달리, 소사는 도미니카공화국의 빈민촌에서 태어나 7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혼자가 된 어머니와 여섯 형제를 부양해야만 했다. 결국 학교도 중퇴하고 오렌지 장사와 구두닦이를 하며 생계를 이끌었고, 14살 때 처음으로 야구 배트를 만져봤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소사는 불과 1년뒤인 15세 때 필라델피아 필리스 스카우트의 눈에 띄어 계약을 하려 했으나, 16세 이하의 선수는 계약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계약이 무산됐고 이에 실망한 소사는 권투선수가 됐다. 하지만 아들이 맞는 것을 너무 슬퍼하는 어머니 때문에 이내 글러브를 벗었고 우여곡절 끝에 17살 때 텍사스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하지만 본고장 야구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1986년 루키리그에서 소사는 229타석 동안 4홈런에 그쳤고, 이듬해에는 싱글A에서 11개의 홈런을 쳤다. 메이저리그에 처음 올라간 1989년에는 3개, 1990년에는 고작 1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홈런타자와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였다. 특히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이적한 1990년에는 타율 .233에 무려 150개의 삼진(33볼넷)을 당했고, 1991년에도 타율 .203에 98삼진(30볼넷)을 당하는 등 야구선수로서의 기본기마저 의심당하고 있었다. 빅리그 4년차이자 23세였던 1991년까지 타율 .228 평균홈런 7개, 295삼진(58볼넷)이라는 수준 이하의 실력을 남긴 것. 시카고 컵스로 또 다시 트레이드된 1992년에도 잦은 부상으로 67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친 소사는 1993년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 팀 최초로 30-30 클럽(33홈런-36도루)에 가입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후 12년간 연평균 45.4개라는 엄청난 홈런을 터뜨렸다. 소사가 환골탈태하게 된 계기는 타격코치 제프 펜트랜드의 조언에 따라 스윙을 짧고 간결하게 바꾸고 공을 기다리는 방법을 터득하면서부터다. 소사의 기록이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그가 단지 홈런만을 양산하는 선수가 아니라, 타율과 타점, 클러치 능력 모두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1998년 맥과이어가 70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최다 홈런 기록을 세웠을 때 66개의 홈런으로 2위에 그친 소사가 MVP를 수상했던 이유도 팀 공헌도가 다른 선수들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새미 소사의 각종 기록 최다 60홈런 시즌 : 3회 최다 50홈런 시즌 : 4회 (베이브 루스, 마크 맥과이어와 동률) 최다 연속 50홈런 시즌 : 4회(맥과이어 동률) 5년 통산 최다 홈런 : 292개(1998~2002) 7년 통산 최다 홈런 : 332개(1998~2003) 10년 통산 최다 홈런 : 469개(1994~2003) 이처럼 한시대를 풍미했음에도 앞서 언급한 대로 코르크 방망이 사건, 약물 파동 등으로 현지 언론의 냉대를 받고 있고, 명예의전당 입성도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명예의전당에 라틴 선수 최초로 입성한 로베르토 클레멘테가 MVP 1회(1966년) MVP 표 10위 이내 7회의 기록했고, 소사는 MVP 1회(1998년) 10위 이내 8회를 기록중이다. 이와 같이 클레멘테에 비해 전혀 뒤질 것이 없는 성적을 기록한 소사이지만, 지진피해를 입은 니카라과 주민들을 구호하러 가던 도중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클레멘테에 비해 도덕적으로 훨씬 낮은 점수를 받으며 합당한 대우 역시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소사는 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선행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조국 도미니카공화국에 태풍 피해가 있을 때마다 적십자를 통해서 식료품, 의약품, 주택 건설 등을 제공하고 있으며 인근 라틴아메리카 국가에도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이 같은 선행은 90년대 초부터 지속적으로 실천되어 왔지만, 모두 적십자 이름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현재는 라틴 아메리카 어린이들의 교육과 보건을 지원하기 위해 '새미소사 재단'을 설립해 운영중이다. 이 재단은 소사가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으로, 보다 많은 후원금을 모금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름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 재단에 소사가 기부한 금액만 최소 70만달러(약 7억원)에 이른다. 뛰어난 기록에 선행도 베풀고 있는 반면, 여러가지 구설수에 오르며 극단적으로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소사는 올시즌 전성기때와는 확연히 다른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며 그의 앞날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고하고 있다. 과연 그가 야구사에 한 획을 그은 훌륭한 타자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갖은 부정한 방법을 사용해 성적을 올린 부도덕한 선수가 될 것인지에 대한 평가는 팬들의 몫으로 남아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 김용철 특파원 기사제공: 마이데일리(http://www.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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