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젠 불우소녀들이 내 반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마침내 줄리아 여사(52)가 이 왕조의 마지막 황태자로 고 영친왕 이은씨의 외아들인 부군 이구씨(51)와 법적인 이혼절차를 끝내고 오는 7월1일 만18년간 정들었던 낙선재를 떠난다. 그에 앞서 줄리아 여사는 회견을 요청하는 기자들을 만났다. 23일 하오6시가 조금 넘은 시각.
『저희들의 이혼에 관해 관심이 많으신 걸로 알고 있읍니다. 우선 제가 준비한 것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읍니다. 그밖에 자세한 부분에 관한 많은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읍니다』고 말문을 연 그는 자신의 이혼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첫째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제가 이 왕가의 대를 이을 아이를 갖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로는 우리 부부사이에 감정적인 긴장이 있었고 또 그에 못지않게 외부의 압력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 부부는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고(77년께부터) 그로 인해 오늘날에는 서로 다른 친구, 다른 관심, 다른 종교적인 믿음을 갖게되어 함께 살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혼제의가 처음 나온 것은 80년12월 이구씨에 의해서였고 마침내 지난 4월2일 당사자끼리는 서로 만나지 않은 채 양측변호사를 통해 모든 법적 절차를 끝마쳤다고 한다.
지난 58년10월25일 뉴욕의 센트럴 세인트조지 성당에서 영친왕 내외의 축복속에 이구씨와 결혼했다고 말하는 줄리아 여사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 그러나 남편의 종교는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혼위자료에 관해서는 『저의 요구는 거의 무시되었읍니다. 제가 낙선재에서 나가 살면서 일할 수 있는 강남의 아파트를 임대할 정도의 명목상의 액수에 불과합니다』고 밝힌다. 그의 측근에 의하면 줄리아 여사는 그가 거처할 장소로 반포동의 한신공영15차 아파트를 l년기간으로 3천만원에 전세냈다고 한다.
그는 64년 남편 이구씨와 함께 한국에 온 후 자신의 전공을 살려 명휘원에서 훈련한 지체부자유 소녀들을 데리고 쿠션·식탁보·가방·의류 등 독특한 디자인과 색감의 수공예작품을 만들어 주한외국인등을 고객으로 판매해왔다. 현재도 그는 8명의 농아자와 2명의 지체부자유 소녀를 데리고 이 일을 하고있다.
『한국인 친구도 많고 또 한국을 좋아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한국에서 살면서 불우한 소녀들을 가르치고 함께 일하면서 사는 것이 저의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게는 또 70년 정식으로 입적시킨 한국인 양녀 은숙양(23)이 있다. 현재 미국에서 요리공부를 하고있다고.
『남편을 좋아했고 존경했읍니다. 지금도 그를 존경하고 있읍니다.』 줄리아 여사는 또 『지난 세월동안 한국인들이 저에게 보내준 친절과 낙선재에서 살았던 기억은 내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살아온 낙선재 한옆 방 10개의 한식가옥 석복헌은 지난 몇년간 주인의 황량했던 심경을 말해주듯 지붕 위에는 잡초가 돋았고 벽도 창도 오랫동안 손질이 가지않은 듯 퇴락해 있었다. 대청 옆 작은 응접실에서 기자와 만난 줄리아 여사는 짙은 남색바탕에 잔꽃무늬가 가득 프린트된 원피스 위에 두 줄 진주목걸이를 걸었다. 두터운 렌즈너머의 두 눈은 따뜻했고 목소리도 침착했다.
『가까운 장래에 그간의 저의 생활을 담은 자서전을 쓸 생각입니다.』지금은 밝힐 수 없는, 그러나 무언가 하고싶은 얘기가 많을 것 같은 여운을 남긴다. <박금옥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