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키스·신」은 상관없다" - 「안방극장 키스·신」 78%가 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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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안방극장의 키스신」에 대한 토론에서는 찬성쪽이 압도적이었다. 토론에 참가한 1백1명중 78%가 약간 넘는 79명이 지지, 10명중 8사람이 찬성하고 있는 셈이었다. 우리사회는 이미 개방사회로 전환했고 그래서 다정한 사람들끼리의 키스정도는 아무런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 찬성축의 의견이다.
찬성측은 안방극장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자연스런 키스신은 청소년 교육에도 오히려 플러스가 된다는 주장이었다. 반대측 의견은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안방극장의 키스신은 가족의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기 때문에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것. 애정의 표현은 우리 고유의 은근한 것이 오히려 정감을 북돋워준다는 주장이었다.
[찬성]

<극중에서부터 서서히>
1년에 한두번 영화구경하기도 어려운 나같은 주부 처지에선 안방극장 신세를 톡톡히 지는 셈이다. 그런데 주말영화 방영 때 보면 인위적 장면커트가 자주 눈에 띄고 그때마다 앞뒤의 내용이 연결되지 않을 때는 정말 울화가 치민다. 보나마나 우리 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 남녀간 애정표현 때문이리라.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이 주된 이유라면 일리가 없진 않지만, 그것만 없으면 청소년들이 건전하게 자랄 것이라는 논리는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같다. 그보다 날로 늘어나는 청소년상대 유흥업소·악성주간지 등을 철저히 단속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대책일 것이다.
또 무조건 안 보여주고 하지 않도록 하는 것보다 TV극중에서부터 서서히 자연스럽게 접하도록 하는 것이 청소년교육을 위해서도 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한석곤<32세·주부·서울 성북구 장위2동68의649>

<아이들은 예사로 생각>
4살 된 딸아이를 둔 주부다.
자식에 대한 엄마의 정으로 평소에 많이 뽀뽀를 해준다.
남편도 출·퇴근 때 아이와 내게 인사로 차례로 뽀뽀를 해준다. 결코 이상하거나 어색하지 않다.
가끔 TV에서 남녀간 키스신이 나올 때 딸애가 『엄마, 아빠도 뽀뽀했지』하고 물으면 온통 웃음바다가 된다. 가족들끼리의 사랑의 표현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되는 모양이다.
너무 농도짙은 키스신은 몰라도 가볍고 정다운 것이라면 안방극장에서도 허용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김기순<33세·주부·충남 대전시 가상동 주공아파트>

<호기심 안 갖도록 해야>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면 자연스런 포옹·키스신을 볼 수 있다. 관객의 입장에서 역겹기는커녕 다정스럽게까지 느껴진다.
서구의 생활방식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잘못이지만, 우리의 의식수준도 키스신 정도를 크게 개탄하고 부도덕시할 정도는 지난 것이 아닌가고 생각한다.
또 요즘의 청소년들에게는 성에 대한 것을 감추기보다는 오히려 개방하고 올바른 지도를 통해 호기심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이영선<23세·학생·인천시 동구 송현1동44>

<남녀간 건전한 교제 유도>
요즘 청소년들의 성문란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있다. 이는 성에 대한 바른 지식이 부족한데서 나온 것이다. 무턱댄 규제보다는 확실한 성지식과 어색하지 않은 남녀간 교제로 유도하는 것이 바른 길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안방극장 키스신 허용은 남녀간의 자연스런 교제를 위한 교육으로서의 효과가 매우 크다고 본다.
이제 우리도 서구적 생활방식에 어느 정도는 익숙해져 있으므로 TV에 키스장면이 등장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일어나는 일은 없으리라고 본다.
김재철 <22세·서울 중구 쌍림동109의2>

<지나친 장면만 규제를>
우리도 이젠 아집과 독선으로만 살던 때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TV에 키스장면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아집과 독선에서 나온 것이다.
하기야 온 집안 식구가 다 모인 자리에서 농도짙은 남녀간 정사장면이 나오면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리라. 그렇지만 가벼운 키스신 정도라면 이제 누구도 어색하게 생각지 않을 만큼 됐다.
무조건 규제보다 어려서부터 서서히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젠 더 이상 잘못된 고정관념에 붙잡혀 있어서는 안 되겠다.
김순남<23세·회사원·인천시 남구 용현4동 180의1>

<잃는 것보다 얻는 것 많다>
자연스런 인간의 행동―.사랑은 인내하며, 온화하며, 무비하지 아니하며…아름다움이며, 성스러우며, 위대하며, 진리이며, 믿음이니 그리하여 원하는 것이라고 했거늘….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은 그것이 단순히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인간 모두에게 참으로 고귀하고 성스러운 것이다.
갑작스런 변화, 즉 지금까지 묶여만 있다가 일시에 풀릴 경우 얼마간 부작용은 있을 것이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TV화면에 키스신이 등장해서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김태진<39세·공무원·충북 충주시 봉방동87의4 농민교육원>

<남녀관계 실상 알려줘>
매사는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한다. 사회가 변하면 의식도 함께 따라가야지 옛것에만 붙잡혀 있어서는 안 된다.
남녀관계도 변하고 있다. 은밀하고 다소곳한 것이 옛날의 남녀관계였다면, 지금의 그것은 개방적이고 노골적이다.
사회의 실상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 방송이라면, 방송내용이 사회의 실상에서 크게 벗어난다면 우스운 일이다.
지금은 그 누구도 남녀간 키스정도를 대단하게 볼 사람은 없다. 거센 물결을 막으려고 애쓰다 둑마저 무너져버리게 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
배철식<27세·서울 용산구 한남동1l5의1>

<어차피 개방해야될 문제>
파도처럼 밀려오는 개방의 물결을 피할 수만은 없다. 잘못된 것은 자연스럽게 교체되어야 하고 올바르게 고쳐져야 한다.
TV화면에 나타나는 남녀의 키스장면도 어차피 닥쳐올 파도다. 모든 것이 변하는 속에 TV극 내용은 변치 않고 가만히 있어야만 하는가.
오히려 그것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면 교육적 효과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엄주식<29세·회사원·서울 영등포구 당산동3가270 우미빌딩401호>
[반대] 어른·아이 온 가족이 함께 있을 땐 보기 민망

<안방극장엔 시기상조>
올바른 성교육이 점차 필요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성교육이 성의 무절제한 개방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안방극장에 키스신을 남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 본다. 안방극장의 의미란 온 가족이 함께 시청해 즐거움을 찾는다는데 있다.
TV에서 여성용 속옷이 자세히 선전될 때도 늙은 부모님께 면구스러울 때가 있는데 키스신이 남발돼서야 안방극장의 의미는 완전히 와해되고 즐거움이 아닌 고역스런 분위기가 연출될 것이다.
김경애<강원도 원주시 학성1동223>


단칸방을 쓰는 관계로 자연히 국민학교 6학년인 아들과 TV를 함께 볼 때가 있다. 일일연속극이나 외화의 경우 키스신이 나올 때는 차라리 TV를 꺼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아이는 아이대로 부끄러워하고 나는 나대로 낯이 뜨거워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안방극장에까지 키스신을 꼭 보여줘야만 드라머의 인기가 올라가는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성 개방풍조가 우리 청소년들을 차차 오염시키는 마당에 안방극장에서만이라도 규제가 이뤄졌으면 싶다.
홍정이<강원도 동해시 북삼동 4통2반>

<윤리관 확립이 먼저 돼야>
요즈음 방영되는 외화에는 키스신이 자주 나오는데 아이들과 함께 시청하기에 민망할 때가 많다. TV에 나오는 선정적인 키스신을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삼촌이 어떻게 함께 편안한 상태로 볼 수 있겠는가.
청소년들의 성교육이 물론 중요한 것임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우리에게는 전통적인 윤리관이 있고 청소년들에게도 이 윤리관의 확립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키스신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시청하고있는 아이들을 볼 때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조규근<회사원·서울 도봉구 쌍문3동 141의3>

<성에 대한 말초적 자극만>
텔리비전은 우리생활에서 어떤 매스컴보다 폭넓게, 빠르게 전달되는 가장 대중적인 매체가 되었다. 이런 텔리비전의 안방극장에서 키스신이 연출된다면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성에 대한 말초적 자극만 더해줄 뿐이며 이것은 곧 성의 개방이 아니라 성에 대한 방관일 것이다.
우리의 안방극장은 외국의 키스신에 못지 않은 우리 한국적인 애정표현으로 연출되어야 한다.
차동욱<35세·경기도 의정부시 가능2동159의5>

<에누리>독자토론 다음주제
다음 토론의 주제는 「에누리」입니다. 『에누리없는 장사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 그동안의 풍토였읍니다만, 이 때문에 우리의 장사질서는 아직도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읍니다.
파는 쪽에선 폭리를, 사는 쪽에선 한푼이라도 더 깎으려고 애쓰다보니 정찰제란 한갓 구호에만 그치고 있읍니다.
독자여러분의 실제경험을 중심으로 의견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투고는 ▲2백자원고지 3장 이내로 ▲이름(익명도 좋음)·직업·나이·주소를 적어 ▲오는 7월3일까지(본사 도착) ▲서울 중구 서소문동58의9 중앙일보 특집기획부로 보내주시면 ▲게재된 원고에 대해서는 「독자토론 참가기념품」을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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