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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탈출 위한 재계 몸부림 전문경영인이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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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올 들어 재계의 경영진 개편이 예년에 없이 빈번하다.
지난 2월 주총 때 한차례 큰바람이 불고 난 뒤인데도 인사바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로 창업 3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이 4월 이후부터 4차례에 걸쳐 2월 주총 때보다 더 큰 폭의 중역진 이동을 단행, 새로이 중간 회장 제를 도입하고 줄잡아 40여명 이상의 중역진을 승진시키는 한편 2세 경영인들을 본격적으로 최 일선에 부상시켰고 효성·한국화약그룹 등이 불황타개를 위해 외부인사를 영입했으며 올 들어 그룹 부회장 제를 신설한 국제그룹을 비롯, 쌍룡·풍산금속 등에서는 전문경영인들의 위치부상이 돋보이고 있다.
이처럼 끊이지 않는 인사선풍은 장기간 계속된 불황의 연장선 위에서 파악할 수 있다.
즉 전문경영인들의 부상과 권한강화, 영업실적부진에 대한 문책인사와 이에 따른 그룹 내 외부로부터의 후속인사, 회장 제 도입을 통한 일선사장들의 세대교체 등이 모두 경영진의 팀컬러를 일신함으로써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재계의 「개각수습」노력인 것이다.

<현대>
현대그룹의 대폭인사는 적극적인 불황타개에도 그 뜻이 있지만 올 들어 어느 때보다도 큰 심경의 변화를 겪은 정주영 회장의 뜻이 크게 작용했다.
창업 35주년을 맞은 해에 미국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고 뜻하지 않게 장남 정몽필 인천제철 사장을 잃은 정 회장은 미국에서 돌아온 직후 지난 5월18일 그룹사장단 중동회의 석상에서 최근의 심경을 피력하고 이어 대폭의 승진인사를 발표했다.
즉 미국 행 도중 1인 회장 체제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밝힌 정 회장은 국제무대에서 사장 대 사장, 회장대 회장의 수주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현대엔진의 김영주 사장을 회장으로, 김형벽 부사장을 사장으로 각각 승진시키고 또 현대중공업의 이춘림 사장도 회장으로 승진시키는 한편 6남 정몽준 상무를 중공업사장으로 부상시켰다. 정사장의 부상에 대해 정 회장은 『정몽필 사장의 타계 이후 많은 생각을 했다』고 말하고 『어떻게 보면 파격적이지만 내 자신 내일 모레가 일흔인데 내가 지도능력이 있을 때, 또 이춘림 회장 같은 좋은 회장이 있을 때 키우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가족회의를 거쳐 결정을 한일이니 잘 보필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잊지 앉았다.
또 정 회장은 정몽필 사장의 처남인 이영복 씨를 동서산업사장으로 발탁했다.
정 회장은 이와 함께 중공업의 한종서·안충승·손명원·이경배 전무와 중전기의 김훈 전무를 대거 부사장으로 승진시키고 미포조선 백충기 부사장, 중전기 지주현 부사장은 각각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이어 정회장은 다시 지난 1일에도 양봉웅 한국포장건설 사장을 회장으로, 사장에는 4남 정몽우 현대건설 상무를 기용해 역시 2세 경영인에게 경영책임을 맡겼다.

<삼성>
삼성그룹은 2월 주총 이후, 또한 이병철회장의 미국 행 이후 아직까지 이렇다 하게 눈에 띄는 임원이동은 없다. 다만 종합건설의 김진구 사장의 건강이 안 좋아 5월 들어 고문으로 한발 물러서고 이에 따라 조주목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됐으며 이밖에 제일제당이 최근 판매조직을 강화하면서 소폭의 이사 급 이상 인사이동이 있었을 뿐이다.
이병철 회장은 미국에 다녀온 후 반도체·로보트 등 첨단산업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기술혁신을 계속 독려하고 있으며 요즘 장기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자·중공업 쪽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국제>
2월 주총 이후 국제그룹 경영진의 가장 큰 변화는 그룹 부회장 제를 처음 도입하면서 손상모 종합상사 사장이 이를 겸직하게 된 것.
손 사장의 그룹부회장 겸직은 같은 시기에 단행된 이춘무 연합철강 부사장의 국제방직 사장 승진과 함께 국제그룹을 전문경영인체제로 굳혀나가려는 양정모 회장의 뜻이다.
이어 6월 들어서도 국제그룹은 최근 국내관광레저산업· 해외수주 등에 적극적인 진출을 꾀하고 있는 국제종합건설 전무에 손혜환 원풍 산업 전무를 옮겨 앉혀 보강하고 이길호 전 코리아엔지니어링 상무를 조광 무역 전무로 끌어오는 한편 지난 1일자로 국제에 흡수 합병된 보고산업 이사에 김?중 전 한국 트랜서 공장장을 맞아 들이는 등 적지 않은 경영진 이동이 있었다.

<쌍룡>
5월초 고려화재의 김소령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면서 때맞춰 제일화재의 이정식 전무를 스카웃, 빈자리를 메웠다. 이와 함께 쌍룡전기가 효성중공업에 통폐합되면서부터 건강이 나빠 쉬고 있던 전홍렬 쌍룡전기사장이 쌍룡종합건설 부사장으로 복귀했다.
쌍룡그룹은 다시 6월초 임원 진 인사를 단행, 주력기업인 쌍룡양회의 안천학 영업담당 상무를 쌍룡제지사장으로 중용하고 역시 양회의 박병철·김석린 상무를 각각 전무로 승진시켰다. 그간 어려울 때 제지를 맡아오며 전문 경영인으로서 뿐 아니라 이론가로서 업계를 대변하는 발언도 많이 했던 조해형 사장이 국민학원 이사장으로 취임, 일단 기업경영에서 손을 뗀 것이나 서성택 국민학원 이사장이 일선에서 완전히 퇴진, 양회 고문으로만 남은 것은 모두 이에 따른 후속인사.

<한국화약>
올해 들면서 태평양건설의 해외수주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미 백텔사·대림. 한국 건업 등을 두루 거친 해외건설의 베테랑 김기연 부사장을 2월 주총 때 남광토건으로부터 맞아들이더니 다시 석달 만인 지난 5월 파격적으로 사장에 승진시켰다. 박진감 있는 해외수주작전을 기대하는 김승연 회장의 신임 포석이다.
이와 함께 경인에너지 이종학 상무도 전무로 승진, 더 큰 권한이 주어졌다.

<기타>
6월 들어 풍산금속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갖춰 유찬우 사장이 회장으로 물러앉으면서 이영세 부사장이 사장자리를 이었다. 한편 효성그룹은 지난 2일 이광덕 전 상공부 차관보와 이현상 전 삼성전자 전무 등 2명의 외부인사를 영입, 각각 효성기계 사장·부사장에 기용함으로써 최고 경영진의 컬러를 일신, 불황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 <김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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