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후반 집값 폭등 200만호 건설로 잡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1980년대 후반에도 요즘처럼 부동산값이 급등해 나라가 온통 뒤숭숭했다(그래프 참조). 당시 노태우 정부는 87년 2월 투기억제대책, 88년 8월 부동산종합대책 등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는 대책을 잇따라 내놓았으나 효과가 없자 공급 정책을 병행했다.

88년 9월 분당.일산을 비롯한 5대 신도시 등을 만들어 92년까지 200만 가구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 계획은 바닷모래 파동 등 주택자재난, 건설경기 과열, 미분양 주택 양산 등 여러 부작용을 낳긴 했지만 91년 말 조기 달성됐다.

집값이 200만 가구 건설 계획을 발표한 직후부터 잡힌 것은 아니다. 건교부 주택백서(2002년 6월)는 "실제 주택이 완공돼 공급되기 시작한 91년을 고비로 집값이 하락세로 반전했다"며 "하락의 주요 요인은 1차적으로 주택공급이 크게 확대된 것이고, 이외에 무주택 우선공급 등 실수요자 위주의 주택공급과 주택전산망 구축을 통한 투기억제시책 등도 안정추세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당시 주택보급률이 69.2%(87년)로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여서 공급 확대의 효과가 컸다고 분석한다. 주택보급률(2004년 102.2%)이 100%를 넘는 요즘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최근 서울의 경우 주택보급률이 아직 89.2%(2004년) 수준이고, 특히 아파트에 대한 거주 욕구가 강해 지속적인 공급 확대 없이는 집값 문제를 풀기 어렵다는 데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 말 기준 전국의 총 주택수는 1236만 가구지만 아파트는 526만 가구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허귀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