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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이구씨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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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지난해 5월 2일 종묘 대제에서 역대 임금들에게 제사를 올리고 있는 황세손 이구씨. 1996년 귀국후 매년 이 행사를 주관해 왔으나 올해는 건강을 이유로 불참했다. [중앙포토]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인 이구(李玖.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명예총재)씨가 지난 16일 오후 일본에서 심장마비(추정)로 별세했다고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측이 19일 발표했다. 74세. 고종황제의 황태자(순종황제의 동생) 영친왕의 아들인 고인의 별세로 대한제국의 적통이 끊어진 셈이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관계자는 "이구 황세손이 나가사키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며 "호텔 종업원이 인기척이 없는 것을 이상히 여겨 방문을 열어보니 화장실에서 숨을 거둔 상태였다"고 전했다.

국권을 강탈당한 뒤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일본에 끌려가다시피한 영친왕과 일본 왕실의 이방자(李方子)여사 사이에 1931년 둘째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형 진(晋)이 생후 8개월 만에 비명횡사해 사실상 마지막 황세손이었다. 일설에 따르면 영친왕의 결혼은 이방자 여사가 불임일 것으로 본 일제가 대한제국의 적통을 끊기 위해 쓴 책략이며 고인의 형의 사망에 대해서도 독살설이 있다. 일본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본 왕실학교인 가쿠슈인(學習院)에서 교육을 받았다. 45년 일제의 패망 후 맥아더의 배려로 미국에 가 매사추세츠공대(MIT) 건축과를 나왔으며 뉴욕에서 건축사 일을 하기도 했다. 58년 10월 뉴욕의 한 교회에서 미국인 줄리아 멀록과 결혼했으나 슬하에 자녀는 없다.

광복이 됐으나 이승만 대통령의 귀국 방해로 조국 땅을 밟지 못하던 고인은 63년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후 병석의 부모, 부인 줄리아 여사와 함께 귀국해 창덕궁 안에 있는 낙선재에서 기거했다. 그러나 70년 영친왕이 서거하고 77년 부인과 별거한 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종친들의 종용으로 대를 잇지 못한 줄리아 여사와 82년 이혼했다. 고인은 한국에 머물던 기간 중 사업에 손댔으나 황세손의 신분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채우려는 사람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실패했으며 이에 크게 낙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고인은 생전에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도 완강히 거절했으며 종친회인 대동종약원의 몇몇 관계자 외엔 일절 접촉을 꺼렸다.

하지만 고인은 자신이 대한제국의 황세손이란 것에 대해선 늘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종묘대제 등 대동종약원의 각종 행사에도 열심이었다. 고인은 89년 어머니 이방자 여사마저 돌아가신 뒤 종친회 등의 권유를 받아들여 96년 영구 귀국하겠다며 한국에 왔다. 그러나 귀국 후 벌인 사업이 다시 실패하자 일본으로 되돌아갔으며, 도쿄 시부야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지내왔다.

장례는 9일장으로 치러진다. 이환의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이사장과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는다. 장례위원회는 일본에서 유해가 운구되는 대로 고인이 기거하던 낙선재에 빈청을 마련할 계획이다. 발인은 24일.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홍릉 뒤편 영친왕 묘역인 영원. 02-765-2124.

이만훈 기자

*** 바로잡습니다

7월 20일자 27면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이구씨 별세' 기사 중 '이구 황세손이 나가사키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기에 바로잡습니다. 이씨는 도쿄 시내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에서 별세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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