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람 사람] "보험 파는데 장애가 무슨 상관이에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이혜경(46.대한생명 의정부지점 팀장)씨는 두 손이 없다. 태어난 지 6개월이 됐을 때 아궁이 앞에서 놀다가 숯불을 건드려 깊은 화상을 입었다. 이 사고로 오른손은 손목까지, 왼손은 팔꿈치까지 절단해야 했다.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두 손이 없다는 사실이 창피해 초등학교 시절 내내 항상 손을 감추고 다녔던 그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친구들의 놀림과 부담스런 시선을 이겨낼 자신이 없어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그는 의수를 끼고 집안 일을 돕고 동양자수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28세 때 남편(48.목수)을 만나 두 딸(고2, 중3)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2004년 1월. 그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그의 소개로 40여 건의 보험계약을 하게 된 보험설계사의 제안을 수락해버린 것이다. 보험계약을 계기로 알게 된 그 설계사는 3년 전부터 이씨의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에 반해 함께 일할 것을 끈질기게 권유했지만 이씨는 그때마다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매번 진지한 권유를 거절하기 미안해 장난삼아 "한번 해보겠다"고 한 것이 자신의 감춰진 능력을 발휘하게 된 직업이 된 것이다.

"한 번 약속한 이상 지킬 수밖에 없었어요."

그녀의 '세상 밖 외출'은 이처럼 우연찮게 시작됐다. 가족들의 반대는 의외로 극심했다. 어느 정도 생활여유도 있는데 몸도 성치 않은 그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3개월을 넘기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협박성 반대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자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라''항상 1등 하라'고 하면서 스스로의 약속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여기서 물러서면 더 이상 살 곳이 없다는 각오로 일을 시작했다. 그의 '두 손'을 보는 사람들의 눈초리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엄마는 그럴 줄 알았어"라는 딸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고 했다. 지난 4월엔 의수를 끼고 운전면허증까지 땄다. 좀 더 빨리 고객을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합격률이 30~40%밖에 되지 않는 변액보험 판매관리사 자격시험까지 한 번에 합격했다.

입사 7개월 만에 팀장으로 승격됐다. 팀장은 10명가량의 팀원 활동을 관리하는 역할이다. 보통 활동 경력이 3~4년 이상인 우수 직원이 맡게되는 자리다.

그가 지난해 거둔 계약건수는 83건, 수입보험료는 2억원이다. 요즘도 한 달에 8~9건의 보험계약을 해낸다. 이는 억대 연봉의 보험왕에는 못미치지만 일반 보험설계사의 두 배가 넘는 실적이다. 이같은 실적으로 2005년 대한생명 연도대상 신인상도 거머쥐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이 일에 잘 적응한 것 같아요. 장애인 등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도 이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김창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