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배당 등 활성화, 자본시장으로 진입 길 터 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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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국내 대표적 배당주 펀드인 신영자산운용의 ‘밸류고배당펀드’는 설정액이 3조원에 육박한다. 다른 펀드에선 돈이 빠져나가는 사이 올해에만 1조3500억원의 자금이 들어오며 단숨에 ‘공룡 펀드’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이 펀드의 보유 종목 평균 배당수익률은 1.8%에 머문다. 해외 주요 배당주펀드들의 배당수익률이 3%에 육박하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은 ‘고(高)배당’ 보다는 배당주 인기에 보유 주식의 주가가 오른 덕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저금리 시대의 대안으로 여기저기서 배당주펀드를 만들고 있지만 국내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배당으로 의미 있는 수익을 내는 펀드는 없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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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 금리가 바닥으로 갈 때 통상 시중 자금은 보다 높은 수익률을 좇아 자본시장으로 몰려간다. 일찍이 저금리 시대로 진입한 서구 선진국 가계도 주식시장을 출구로 삼았다. 그러나 국내 사정은 다르다. 가계의 금융자산 중 예금·현금 비중은 금리가 본격적으로 꺾이기 시작한 2009년 45%에서 지난해 말 45.5%로 오히려 높아졌다. 반면 주식 비중은 19.1%에서 17.0%로 떨어졌다. 예금에 들어가 있던 보수적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어갈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탓이다. 상징적 걸림돌이 ‘배당의 부재’다. 본래 주식을 사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상장사가 번 이익을 주주와 나누는 배당을 얻기 위해서다. 투자위험이 큰 주식시장에서 배당은 일종의 ‘안전 마진’ 역할도 한다. 미국 등 선진국 가계와 연기금이 주식투자 비중을 높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가계·연기금의 주식 투자 증가는 주가의 전반적 상승으로 이어지며 선순환 효과를 낸다.

 그러나 국내 배당수익률은 최근 3년간 1% 초반대에 머물렀다. 안전자산인 국채 수익률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본지가 대신증권에 의뢰해 주요국의 배당수익률 현황을 살펴본 결과 최근 5년간 상장사 배당수익률이 국채(3년물) 금리에도 못 미쳤던 나라는 한국과 중국뿐이었다. 미국은 배당수익률이 국채수익률보다 꾸준히 0.8%~1.9%포인트 높았다. 영국(2.3~4.1%P), 프랑스(2.7~3.2%P)는 물론 대만(2.0~4.0%)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쌓이는 돈이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다. 노후대비에 나선 가계는 금융자산 중 연금·보험 비중을 2009년 24.3%에서 29.8%까지 급격히 늘렸다. 하지만 늘어난 연금자산도 자본시장으로 가지 않았다. 퇴직연금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산의 93%를 은행 예적금에 넣었다. 자연히 수익률은 바닥이다. 퇴직연금 적립액의 92%를 차지하는 원리금 보장상품의 평균 수익률은 6분기째 0%대다.

 전문가들은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의 가계도 저위험·저수익을 벗어나 4~6%의 ‘중위험, 중수익’으로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고 권한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 김동엽 센터장은 “금리가 6%면 원금을 두 배로 불리는데 12년 걸리는 반면 절반인 3%가 되면 24년, 2%가 되면 36년, 1%가 되면 72년이 걸린다”며 “무작정 위험을 피해 예금에 안주해선 도저히 답이 나올 수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에 금융계가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건 무너진 금융산업 생태계에서도 기인한다. 과거 저축은행들은 은행권보다 높은 중금리 예금 상품으로 가계 자산운용의 숨통을 일부 틔워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은행의 몸집 불리기에 영업기반을 잃은 저축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11월 현재 2.68%로 은행보다 불과 0.4% 높은 수준이다.

 금융사들이 타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 규제 때문이기도 하다. 한 금융지주사 임원은 “정치권이 금리와 수수료에 개입하고, 감독당국이 숨은 규제인 ‘모범규준’을 앞세워 일일이 간섭하는 상황에선 상품 경쟁이 일어날 수 없다”며 “이런 환경에서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가 나올 여지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메리츠자산운용 이정복 대표는 “한국에서 자산운용업 인가를 받으려면 최소 100억원의 자본금이 필요한데 미국에는 없는 기준”이라면서 “창의적인 인재들이 금융권으로 쏟아져 들어오게 하려면 진입 규제를 확 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민근·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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