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기 득점’ 삼성 김헌곤의 평생 못 잊을 ‘10초’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삼성 김헌곤(26)은 올해 생애 첫 한국시리즈(KS) 무대를 밟았다. 최근 상무 야구단 입단 테스트를 가진 터라 더 절박했다. 그는 지난 10일 KS 5차전에서 평생 잊지 못할 '10초'를 경험했다.

삼성은 1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넥센과의 KS 5차전에서 2-1로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썼다. 최형우가 0-1로 뒤진 9회 2사 1, 3루에서 KS 통산 8번째 끝내기 안타를 뽑아냈다. 최형우의 적시타는 김헌곤의 발 덕분에 더 빛날 수 있었다.

김헌곤은 이날 9회 말 대주자로 출장했다. 류중일(51) 삼성 감독은 9회 2사 1루에서 채태인이 안타를 뽑아내자 김헌곤을 1루 대주자로 투입했다. 김헌곤은 최형우의 타구가 나오는 순간 전력질주를 했다. 그러곤 홈에서 넥센 포수 박동원을 피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했다. 2만3000여 관중의 모든 시선이 향한 순간, 그는 홈 플레이트 모퉁이를 터치했다. 최수원 구심을 양팔을 벌려 세이프를 선언했고, 삼성 선수들은 모두 그라운드로 뛰쳐 나와 환호했다. 김헌곤은 다음 타석 대기 중이던 이승엽과 얼싸안고 기뻐했다.

그가 홈을 밟기까지는 10~11초 남짓의 시간이 걸렸다. 이 짧은 시간 김헌곤의 머릿 속에는 갖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3루 베이스를 통과하는 순간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홈 플레이트를 앞두고는 "'내 손으로 찍으면 오늘 끝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상대 포수 박동원이 대기하고 있는 것을 봤다"면서 "홈 플레이트 끝 부분이 정말 희미하게 보이더라. 태어나서 이렇게 죽자고 달린 건 처음이다"고 했다. 대주자로 투입된 만큼 부담감이 컸을 터이다. 그는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땅을 밟은 뒤 이렇게 열심히, 빠르게 달린 건 처음인 것 같다"고 밝혔다.

2011년 신인 드래프트 5라운드 전체 38순위로 삼성에 입단한 그는 2군에서 '연습벌레'로 통했다. 지난 2년간은 손목 부상과 수술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올 시즌엔 배영섭(경찰야구단)의 공백으로 주전 외야 한 자리가 비면서 많은 기회를 얻었다. 시즌 성적은 총 76경기에서 타율 0.260-3홈런-20타점을 기록했다.

김헌곤은 올 시즌 뒤 군 입대 예정이다. KS 1차전이 열린 지난 4일에는 경북 문경에서 상무 야구단 입단 테스트를 받은 뒤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대구구장에 도착했다. 최종 합격하면 이번 연말에 입대한다. 김헌곤에게 이번 KS가 더 절실한 이유다. 그는 "지금껏 야구를 하면서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다"면서 "내게 결승득점을 올릴 수 있는 상황이 왔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인 것 같다"고 기뻐했다.

잠실=이형석 기자 ops5@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