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결말을|박힌 가시를 깨끗이 안 뽑으면 살이 곪고 썩는 법|신달자<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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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왜 여인이라 부르는가.
장영자는 십 년 앓아 누운 시부모를 받들어 효부 상을 받았거나 자신의 노동을 판돈으로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남몰래 도와 준 미담의 주인공이 아니다.
그는 연산군의 총 희로서 왕의 총애를 믿고 국사를 어지럽히고 마침내 연산군을 실정케 한 요녀 장록수나, 숙종의 빈으로 왕후인 민비를 폐하기도 했던, 능지처참을 당해도 몇 번을 받아 마땅했던 그 유명한 장희빈과 같이 한나라를 깊이깊이 흔들어 놓은 대 죄인이다.
두 손에 굵은 수갑을 찬 문제의 죄인에게 장 여인이란 호칭을 붙이는 것은 우리들 모두의 오류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장록수나 장희빈은 그 간계 함이 하늘을 찔렀으나 궁중법도로서 끝까지「마마」의 칭호를 받았다가 죄상이 드러나고 처참한 죽음을 당하매 그 칭호도 화려했던 한 순간의 삶과 더불어 멀어져 갔다.
국민의 돈으로 자신의 허영과 사치를 덕지덕지 발랐던 사기행각의 죄인에게「여인」이란아름다운 호칭은 과분한 대접 같다.
지금은 장이 이로 바뀌어 그 죄가 좀은 가벼워 졌는가, 그런데 이로 바뀐 사실이 문짝처럼 신문을 뒤덮는데도 무릎을 치며 놀라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인간의 값은 싸구려로 떨어지고 화폐가치만 인플레가 되어 화폐공황을 이루고 있다.
헛헛 하게만 느껴지던 강사 료 봉투가 6월부터 더 형편없게 쪼그라들거라 생각되니 첫 강의를 위해 새벽부터 집을 나서는 발길이 전에 없이 무겁고 초라하게만 느껴진다.
어느 집 고등학생이 아버지의 월급을 물어 30만원이라고 대답하자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는 일화는 모두 이번 사건으로 받은 깊은 상처들이다.
능력 껏 보수를 받는 당위의 상식을 못난 짓으로 생각하는 사회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은 구역질과 냄새를 참고서라도 시원한 결말을 봐야 할 것이다.
잊어서는 안 된다. 돌아서서도 안 된다. 우리는 주어진 현실적응과 체념과 안일에 허약하여 헤프게 용서하는 국민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경우용서는 사랑이 아니다. 완전한 이해와 납득만이 용서요, 사랑이 될 것이다. 우리의 경제가 사상누각처럼 위태로운 지금, 그 아픈 가시를 빼내기 위해 어느 정도 깊이 살을 헤집고 있는지 의문이다.
가시를 부러지게 해서도, 피가 나고 아프다고 해서 중단되어서도 안 된다. 가시를 빼어 내는 일 만이 살이 곪고 썩지 않는 첩경이 될 것이다.
거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지난번 국회질의 또한 국민들은 지켜보아 왔다. 가시를 빼려는 것인지, 그저 살만 헤집어 놓으려는 것인지l.
한나라의 동중서는 의를 바르게 함에 이를 생각지 않으며, 도를 밝힘에 공을 꾀하지 않는다고 했다.
적어도 우리에게 낭만은 아니라도 그 비슷하게 공리와 이기가 싸우는 이상주의라도 살아났으면. 그래서 이 신록의 6월에도 자꾸 헛디뎌지는 막막한 걸음을 바로 세울 수 있었으면 한다.
「채플린」의 희극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어떤 과학자가 공장에서 일을 잘 할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하였다. 공인이 일에 꾀를 부리면 사람을 때리는 기계다. 그후 기계를 발명한 과학자가 기계 앞에서 일을 하다가 피곤하여 잠시 쉬고 있을 때 기계가 과학자의 뺨을 후려치는 희극이었다.
어쩌면 지금도 생각하면 아리송하기만 한 장영자의 싸늘한 미소가 이런 것의 부스러기는 아닐는지.
물론 오늘의 이 사건은 우리의 의식 속에 짙게 깔린 배권·배금 이상의 필연적인 귀결일 수밖에 없지만, 어서 깊이 숨어 가는 가시를 찾아 말끔히 뽑아 내고 새로운 질서와 안정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공자가 늙은 노파 한사람을 범이 많은 마을에서 만났다.
노파는 공자에게『내 아버지가 범에게 죽었고, 남편과 아들도 범에게 죽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공자는『그러면 어찌하여 다른 곳으로 이사해 가지 않았소?』하고 물었다. 그러자 노파는『그래도 이 마을의 정치가 좋아서요!』라고 대답했다 한다.
장 여인은 어떻게 될 것인가. 흑백을 파헤치려는 정부의 자세, 공정한 재판을 통해 사회정의를 지킬 사법부의 양식에 거는 기대가 충족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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