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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다고 골프 말렸던 아버지 … 그 앞에서 LPGA 우승한 이미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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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국 여자골프의 새로운 신데렐라 탄생 순간은 유리구두처럼 아찔하고 반짝반짝 빛났다.

 이미향(21·볼빅·사진)은 9일 일본 미에현 시마시 긴데쓰 가시고지마 골프장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미즈노 클래식 최종 3라운드에서 5차 연장 접전 끝에 첫 우승컵에 입맞춤했다. 이날 연장전은 2012년 킹스밀 챔피언십 1박2일 9차 연장 혈투 이후 최고의 명승부였다. ‘킹스밀 혈투’는 신지애(26)와 폴라 크리머(28·미국)의 맞대결이었지만 이번 대회는 이미향, 이일희(26·볼빅), 고즈마 고토노(22·일본) 3명이 숨 막히는 승부를 벌였다.

 연장 3번째 홀이 백미였다. 고즈마가 10m 넘는 일직선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자 일본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승이 결정된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일희도 10m 거리의 롱 퍼트를 홀컵에 떨어뜨리며 응수했다. 3명 중 홀컵에 가장 가까이 붙이긴 했지만 7.6m 거리라 이미향의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압박감 속에서는 1∼2m 퍼트도 어려운 법인데 이미향은 뚝심으로 위기를 이겨내며 버디를 낚았다. 연장 5번째 홀에서는 세컨드 샷을 3번 하이브리드로 치는 승부수를 걸어 50cm 버디 찬스를 잡았고,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미향은 고교생 신분으로 2012년 LPGA 투어 Q스쿨에 도전해 정회원 자격을 따낸 될성 부른 떡잎이었다. 2009년부터 3년간 국가대표 상비군을 지낸 그는 국내 투어를 거치지 않고 꿈을 향해 미국으로 직행한 이상주의자였다. 2012년 시메트라투어(2부)를 통해 이듬해 1부 풀시드를 따냈고, 올해 톱10 3차례에 들면서 상승곡선을 그리더니 마침내 LPGA 투어 첫 승을 따냈다. 지난 2월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뉴질랜드 여자오픈에서는 리디아 고(17)를 따돌리고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1m62cm로 또래들에 비해 작은 체구지만 똘망똘망한 눈빛을 지닌 이미향. 4살 때 아버지를 따라 골프를 시작했는데 “작으니까 하지 말자”는 말에 “가장 멋진 스윙을 만들겠다”는 기백으로 뜻을 굽히지 않았다. 명예의 전당 입성부터 자신의 이름을 딴 대회 개최까지 포부도 크다. 2억원 가까운 우승 상금(18만 달러)을 딸 거라 생각지도 못했던 이미향은 경비를 줄이려고 항상 함께 했던 아버지와 캐디 없이 10일 멕시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그는 이미 혼자서도 세계를 정복할 수 있을 만한 배짱과 강단을 가졌다.

김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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