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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銀 부장 "현대상선 돈인줄 몰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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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북 송금 의혹 사건에 대한 송두환 특검팀의 수사가 사건의 두 핵심 축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

두 축은 당시 작업을 사실상 총지휘했던 박지원(朴智元.당시 문화관광부 장관) 전 청와대 비서실장, 그리고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다.

朴전실장에 대해서는 지난 1일 수행비서였던 河모씨 집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당시의 역할에 대한 정밀조사가 본격화됐다.

여기에 2일 외환은행 실무간부에 의해 국정원의 당시 역할도 새로이 드러났다. 송금 루트(서울 외환은행→마카오 북한 계좌→북한)도 이 관계자가 처음으로 밝혔다.

◆드러난 송금 경위=2000년 6월 외환사업부장이었던 백성기씨는 이날 특검 조사를 받은 뒤 기자들에게 당시 돈이 북한으로 갈 것임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국정원 측이 북한에 보낼 돈이라면서 협조를 요청했으며, 외환은행은 이 돈을 국정원이 요구한 마카오의 한 북한 단체 예금 계좌로 보냈다는 것이다.

그는 국정원의 해외 송금에 대해선 은행 측이 용처를 물을 수 없기 때문에 어떤 명목인지는 알 수 없었다고 밝혔다.

비록 나중에 기자회견을 갖고 "북으로 돈이 갔는지는 몰랐다"고 부인하긴 했지만, 그의 원래 말 대로라면 국정원은 북한과의 송금루트를 확보해 놓고 송금을 주도한 것이다. 특히 白씨는 "당시 송금이 현대상선과는 무관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알았다"고 말했다.

은행 측에서 현대의 관련 여부를 몰랐다는 것은 송금에 사용된 외환은행의 계좌가 현대상선 것이 아니었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 국정원의 비밀공작금 송금 계좌이거나 국정원이 관리하는 계좌 가운데 하나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국정원 계좌로는 1997년 대검중수부의 김현철 의혹사건 수사 때 '○○문화사'라는 명의로 운영되던 계좌가 드러난 바 있다.

정황을 종합할 때 대북 송금은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을 국정원이 인출해 외환은행의 국정원 관련 계좌를 통해 했다는 그림이 그려진다.

김충식(金忠植) 전 현대상선 사장이 측근 등에게 "청와대와 국정원이 현대상선 계좌를 빌려달라고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한 사실이 설득력을 얻게되는 셈이다.

◆수사 급진전 가능성=특검 수사는 따라서 ▶국정원이 어떤 명목으로 북한에 돈을 보냈고▶송금 기획은 어느선에서 이뤄진 것인지로 모아질 전망이다.

박지원 전 실장의 수행비서 집에 대한 압수수색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송금과정의 의문을 풀 단서 확보 차원으로 볼 수 있다.

河씨가 수행비서로 재직 중이던 2000년 3~4월 朴전실장이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북측인사와의 물밑접촉을 통해 송금 부분을 협의했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국정원 전.현직 고위 간부 및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특검의 조사가 조만간 시작될 것이어서 이 부분에 대한 윤곽은 머잖아 드러날 전망이다.

여기에 산업은행과 현대상선 관계자의 조사에서 이미 국정원과 정치권의 개입 여부가 일부 확인된 것으로 알려져 임동원.박지원씨 등 사건의 핵심 인물로 수사가 빠르게 진척될 가능성도 있다.

또 국정원이 외환은행 측에 협조를 요청한 부분을 조사하기 위해 김경림(金璟林) 전 외환은행장에 대한 소환도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전진배.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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