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국의 새 출구…|영수회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장 사건의 늪에 빠져 출구가 막힌 것 같던 정국에 「영수회담」이란 탈출로가 마련되고 있다. 4일 열린 3당3역 회담은 종전에 볼 수 없던 수준 높은 정담을 교환한 끝에 영수회담 추진 등 몇 가지 굵직한 원칙합의를 봤다.
지난 70년 은밀히 개헌논의까지 했던 여야 8인 중진회담을 연상케 하는 3당3역 회담은 여러 면에서 앞으로의 시국·정국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고있다.
○…4일 3당3역 회담에서 가장 심도 있게 논의된 문제는 영수회담과 추가 인책문제.
민한당의 임종기 총무가 먼저 꺼내고 유한열 사무총장과 김현규 정책위의장이 부연 설명한 영수회담은 의제와 형식에 있어 3당의 견해가 조금씩 다르다.
민정당측은 최고정치지도자들의 통치이념·철학·경륜이 논의돼야 한다는 전제아래 영수회담이 주선되어야 한다는 입장 때문에 인책문제 등 구체적 의제는 어느 정도 밑에서 결론들 낸 후 회담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종찬 민정당 총무는 『영수회담에서 누구누구는 인책해야 한다는 말을 할 수는 없다』 면서 『사무총장들간의 회담에서 상당부분 합의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민정당은 영수회담의 형식도 과거 양당제 때처럼 여야 단독면담보다는 「3당 대표가 대통령을 면담하는 형식」을 바라는 것 같다. 가급적 대통령과의 면담이 양자간에 구체적 사안을 협상하는 기회가 안됐으면 하는 눈치.
반면 민한당은 전두환 대통령과 유치송 총재간에 구체적인 문제가 「획기적으로」해결될 것을 희망하고 있다.
임 총무는 『3역 회의가 해결할 것은 해결하고 견해가 다른 모든 문제를 영수회담에 넘기자』는 주장이다.
민한당이 이같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현정부·여당의 권력구조로 보아 근본적인 것은 대통령과 직접 만나야 책임 있는 답변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
아울러 차제에 제5공화국하의 창당과정에서 사무치게 느꼈던 컴플렉스를 씻고 대통령을 제l야당 당수가 상대할 수 있는 위치로 격상시켜보자는 계산이 숨어있다.
그러나 민한당의 이 같은 태도는 민정당이 수용태세를 갖추지 않고 있고 국민당의 반발이 워낙 거세어 「희망사항」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국민당은 기본적으로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민정당 정부의 「양식과 배려」를 믿고있다.
이동진 총무는 미국에 가 있는 김종철 총재에게 급거 귀국을 요청하는 등 3당 영수회담의 준비를 진행하고있어 민정당측으로부터 확고한 언질을 받은 인상.
민정·국민당의 이 같은 「벽」을 의식한 민한당측도 이날 3역 회담을 끝낸 후에는 당초의 단독 영수회담에서 다소 후퇴한 느낌. 임 총무는 『유 총재만 부를 것이냐, 국민당 김 총재도 부를 것이냐는 전 대통령이 결정할 문제이고 세 사람이 모여도 단독요담은 가능한 것』이라며 신축성을 보였다.
○…3역 회담의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추가 인책문제가 될 전망.
회담에서 민정당측은 『우리당의 의총분위기를 보면 알지 않느냐』는 말로 반응을 보였으나 회담 후 이종찬 민정당 총무는 『우리당의 총재가 바로 임명권자이기 때문에 민정당이 이 문제에 앞질러 태도를 표명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일부 장관의 추가인책은 단행시기가 영수회담 전인지 후인지가 문제될 것이란 점을 시사.
문제는 인책대상의 범위라고 볼 수 있는데 총리와 문교장관을 포함시키자는 야당주장을 정부·여당이 받아주느냐가 열쇠가 될 것 같다. 오는 8일 열릴 3당 사무총장회담을 거쳐봐야 이 문제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민한당이 이규호 문교장관을 인책대상에 포함시킨데 대해 김현규 정책위의장은 『정부가 이·장 사건으로 인한 민심이탈을 난국수습이라는 차원에서 처리한다면 대학가의 「소리」도 귀담아 듣는 것이 현명하다』는 말로 설명했다.
이에 대해 권익현 민한당 총장은 『장 여인 사건과 관련이 없는 일을 끌어들여 왜 문제를 확대하려 하느냐』고 했다는 후문.
이밖에 민한당은 정치규제자 해금, 언론·국회활성화 등 민주화개혁문제를 영수회담의 의제에 넣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민정당 총무는 회담 후 『정치규제자 해금은 야당의 당내사정과도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며 야당측이 그렇게 강력히 요구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했고 이 국민당 총무도 『민한당은 솔직이 말해 규제자들에게 줄 자리가 없지 않느냐』며 민한당의 주장에 표리가 있는 것으로 해석.
다만 국회법·언론기본법개정 등에 있어 민정당이 종전보다는 좀더 진지하게 경청하고 고려할 수 있다면 민한당이 내거는 정치활성화요구는 충족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 분석.
○…3당3역 회담이 별다른 진통 없이 열려 여야영수회담 추진에 쉽게 합의한 것은 여야의 이해가 일치했기 때문.
민정당으로서는 임시국회가 충족시키지 못한 이·장 부부사건에 대한 국민의 의혹과 불신을 하루 빨리 제거하지 않고는 정치적 안정이나 경제회복을 가져올 수 없다는 현실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적 여백은 정치적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이종찬 총무)는 민정당의 인식은 다소간 야당에 영역확대를 허용하는 한이 있더라도 여야가 함께 나서는 것이 국민을 설득하고 사건을 빨리 망각시키는 지름길이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
반면 야당은 수 부족·역부족으로 돌리고만 원내투쟁의 미횹함을 어떤 형식으로든 해명하고 나아가 뭔가를 해야한다는 당 내외로부터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최근 당내 사정 때문에 유치송 총재로서는 뭔가 지도력을 보여야만할 사정이었다.
민정당이 뭔가 해야한다고 판단한 것은 임시국회 막바지에서 유 민한당 총재가 「비장한 결심」을 했다는 때부터.
국정조사권발동 등을 부결시키는 외에 아무런 다른 선을 못 가졌던 민정당으로서는 야당입장을 전혀 고려해 볼 수 없는 좌절감을 느꼈고 그래서 한 고위당직자는 「제한적이고 단기적인 국정조사권발동」이란 아이디어도 꺼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는 것.
국회가 끝난 후인 2일 간부들이 고위층을 방문한 자리에서 민정당은 3당3역 회담 제의방침을 정했고 그 때 이미 3역 회담은 영수회담의 예비회담으로 설정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특히 관계장관의 추가인책 문제 등에 있어서는 여야의원간에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에 민정당은 야당주장을 긍정적으로 받아줄 카드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민한당은 이런 민정당의 자세를 유 총재의 제의를 들어줄 희망적인 조짐으로 해석하고 회담에 응한 것. 그래서 민한당은 처음부터 가급적 많은 것을 얻어내는 협상고지를 선점하는 방안에 골몰했다.
3당3역 회담의 「의제교과서」가 된 셈인 유 총재의 회견내용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3당3역 회담이 영수회담의 성사로 끝나고 말지, 보다 지속적으로 열려 뭔가 깊은 애기를 더 오래 나눌지는 아직 미지수다.

<전 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