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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돌] 마샤오춘의 질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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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중국기원 총감독이자 유명한 독설가인 마샤오춘(馬曉春) 9단이 이창호 9단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지난 8일 갑조리그 직전 가진 기자회견에서 "오늘날 바둑계엔 두 사람의 천재가 있다. 한 사람은 나고 다른 한 사람은 이세돌이다. 그런데 세상에선 우리 둘을 비정상으로 본다"고 말했다. 본인과 이세돌이 튀는 행동이나 언변을 가끔 구사해 구설에 오르기는 하지만 '진정한 천재는 우리 둘'이라는 얘기다.

마샤오춘 역시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기사니까 여기까지는 그리 이상한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다음 이어진 이창호 9단에 대한 발언은 듣는 이를 어안이 벙벙하게 만든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전에 모두 이창호를 주시했는데 사실 이창호가 무슨 연구할 게 있는가. 그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모든 변화에 대응한다. 그는 늘 싸우지 않고 이기려 한다. 그러나 이세돌은 다르다."

마샤오춘은 이창호를 깎아내리는 대신 이세돌을 침이 마르게 칭찬하며 이세돌에 편승(?)해 자신을 이세돌과 같은 과(科)로 치켜세우고 있다. 듣던 대로 재미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마샤오춘은 이 발언이 오히려 스스로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우선 그는 이창호 9단과 31번 싸워 5승26패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대회 결승전에선 네 번 만나 전패를 기록하고 있다. 자신을 압도적으로 이긴 상대를 놓고 연구할 게 없다면 어떤 바둑을 연구해야 할까. 그는 혹 패배를 승복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마샤오춘은 이창호가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변화에 대응한다고 했는데 그 말은 옳다. 그러나 고요함 속에서 움직임을 추구하는 정중동(靜中動)이야말로 바둑의 심오한 원리가 아니던가. 또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은 중국이 추앙하는 손자(孫子)가 최상의 전법으로 꼽은 바로 그 가르침이 아니던가.

이창호 9단은 많은 정석을 재해석했고 두터움의 가치를 높여 현대바둑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또 극도로 정밀한 균형감각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계산력으로 바둑의 본질마저도 바꿔놓은 위대한 바둑의 천재다. 변화가 없는 듯한 그의 바둑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선 가장 많은 것을 변화시킨 것이다.

지금의 이창호는 물론 전성기의 이창호와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 해서, 이창호가 종종 패배를 기록하고 있다 해서, 세계바둑을 10년 넘게 제패한 이창호 바둑 자체를 폄하하려는 마샤오춘의 발언은 좀체 이해하기 어렵다. 타고난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그가 왜 이창호에게 연전연패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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