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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AIIB 구상, 한국도 적극 참가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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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문정인
연세대 교수
정치외교학

10월 24일 중국 베이징에서는 21개국이 참여하는 ‘아시아 인프라스트럭처 투자은행(AIIB)’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 서명식이 열렸다. 아시아 지역의 도로·철도 등 인프라 개발을 위한 투자재원을 조달한다는 목적으로 중국 정부가 제안한 이 은행은 초기 자본금 500억 달러를 중국이 출자했고 향후 1000억 달러까지 자본금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세계은행(WB)·아시아개발은행(ADB)과 더불어 AIIB는 아시아 개발도상국 경제발전에 공헌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각별한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AIIB는 출범 초기부터 한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일본·한국·호주 등 자본 출자가 가능한 공여국들은 참여하지 않은 반면 수혜국들이 양해각서 체결의 주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의 참여에 공을 들여왔다. 지난 7월 국빈 방한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요청했음에도 한국 측이 불참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섭섭한 심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간 베이징은 박근혜 정부가 표방해온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신(新)실크로드 사업 등을 실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AIIB라며 한국의 동참을 기정사실화해 왔다. 특히 한국 건설업계의 비교 우위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는 게 현지 분위기다.

 우리 정부가 대외적으로 들고 있는 불참 이유는 AIIB의 지배구조와 세이프가드 문제다. 우선 중국이 전체 지분의 50%를 보유하는 구조와 집행부 중심의 운영체계는 국제관례나 투명성·공평성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경·노동·양성평등 등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가치와 규범을 준수하는 데 있어서도 관련 세이프가드의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는 점 역시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이유는 미국의 반대에 있다. 7월 미국 정부는 한국의 AIIB 참여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면서 “중국이 AIIB를 정치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한국 가입 시 “그동안 양국이 쌓아 왔던 우방으로서의 신인도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쉽게 말해 AIIB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해온 글로벌 금융 헤게모니에 대한 중국의 도전이므로 한국을 포함한 미국의 동맹들은 이에 동참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중국 정부의 반발은 크다. 무엇보다 중국의 출자비중 50%는 확정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은행의 중국 측 설립 책임을 맡은 진리췬(金立群) 조장은 “미국·한국·일본 등이 참여해 자본금 규모가 커지면 중국 지분은 국제관례에 따라 30% 이하로 하향조정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표결 메커니즘과 집행부 운영은 물론 환경·노동·양성평등 문제 같은 세이프가드에 대해서도 국제 규범과 가치를 준수할 것이라는 점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금융패권에 대한 도전이라는 세간의 해석에 관해서도 불만이다. 중국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더불어 번영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동남아·중국·중앙아시아, 그리고 중동과 유럽을 연결하는 철도·도로망 등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고, 그 맥락에서 시진핑 주석도 육상과 해상에서 새로운 실크로드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사업에 필요한 막대한 투자비용을 중국 혼자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에 AIIB 설립 제안을 했다는 얘기다.

 사실 2010~2020년 기간 중 아시아 지역의 인프라 사업 투자에 8조 달러의 자금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ADB만으로는 역부족이다. 1년에 가용할 수 있는 전체 자금은 100억 달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인프라 건설을 전문적으로 추진하는 AIIB의 출범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또한 AIIB는 WB나 ADB와 상호보완적인 성격의 기구라 할 수 있다. 김용 WB 총재가 이 구상을 환영하면서 “정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배경이다. 우리 정부도 보다 대범해질 필요가 있다. 미·중 사이의 군사적 경쟁이라면 몰라도 경제개발과 인프라 건설이라는 공공재 조달의 경우 두 나라 사이의 경쟁은 오히려 권장할 만한 일이고, 양측 모두와 협력해 나가는 ‘윈-윈’의 자세가 바람직한 것 아닌가. 군사동맹과 개발협력을 연계시키는 것은 어쩌면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패착일지 모른다.

 오늘(10일)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한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 북핵 문제와 6자회담, 남북관계 악화 등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은 이 시점에서 열리는 회담이다. 우리의 국익을 냉정하고 차분히 고민한 다음 시 주석이 요구할 AIIB 참여 문제에 대해 현명한 답안을 내놓기를 기대해 본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