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은 이철희" 보도진에 알려-검찰 주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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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장 여인 사건을 수사해온 대검 중앙수사부는 20일의 사건 전모 발표 때보다 28일의 장관 국회보고에 더욱 신경을 쓴 듯한 인상.
20일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해놓고도 단 하루도 쉰 사이 없이 다음날부터 수사 팀은 국회자료 각성 작업에 들어가 매일 하오 1시에 대검 13층 회의실에서 수사 검사 전체 회의를 갖는 등 치밀한 준비를 했다.
몇몇 간부들은 기자들이 액수의 내용을 묻는 등 질문을 할 때마다 『국회 자료를 보면 의문이 풀릴 것이다』고만 대답해 국회의원들에게 조금이라도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고 지난 20일의 검찰 발표 때 일부러 일부 사실을 제외시킨 것 같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철야 작업 끝에 검찰의 국회보고 자료 작성이 마무리된 것은 27일 새벽.
이 초안은 즉시 정치근 장관에게 보고됐고 이를 검토한 정 장관은 몇가지를 보충토록 지시했는데 여기서 추가된 것이 「이철희의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범행」이란 대목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앞서 이날 아침 일찍 정 장관, 신임 김석휘 총장, 이종남 중앙수사부장이 동시에 집을 나섰으나 행선지에 대해서는 억측이 구구.
완성된 보고 자료는 법무부에서 맡아 한자를 섞은 공타로 69페이지로 되어 있으나 뒤늦게 추가된 듯 『이의 주동적이고 계획적 범행』임을 강조하는 부분이 「18-l」「18-2」 등 2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어 실제로는 71페이지에 달했다.
또 보고 자료에는 이철희가 프랑스에서 고위층을 만났다는 부분은 전혀 없고 이가 중동을 방문했던 대목도 「어느 나라의 누구 초청」이라고 명기했다가 뒤늦게 모두 지워버린 흔적을 남겨 대외 관계에 매우 신경을 쓴 듯이 보였다.
이철희가 이 사건의 「주역」이란 사실은 27일 하오부터 대검 간부들이 보도진에게 흘려주기 시작, 모처림 검찰 스스로 보안 벽을 깼는데….
중앙수사부의 한 과장은 27일 상오 10시쯤 『이철희 부분을 관심 있게 캐보라』며 선심을 쓰는 척 귀뜀해줬고 이종남 중앙수사부장은 이날 하오 5시쯤 『내일 국회보고 자료인데 내가 미리 발설해도 될지 모르겠다』고 안개를 피운 뒤 『사실 이 사건의 주범은 이철희이고 이가 한·중동 합작 은행 설립 자금 마련을 위해 꾸민 사기극』이라고 설명했던 것.
워낙 엄청난 내용이라 마감 시간에 쫓긴 기자들은 이것을 즉시 송고할 수밖에 없었지만 뒤늦게 내용이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데스크에다 『보도에 신경을 써달라』고 연락하는 등 한때 소동. 그도 그럴 것이 사건 전모를 발표한 후 1주일이 지나서 주범이 나타난다면 검찰은 한달 동안 20명을 구속하면서 주법이 누군지도 모르고 수사한 셈인데다 이가 사기극을 벌여 모은 돈으로 은행을 설립하려 했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던 것.
28일자 아침 신문을 보던 한 대검 수사관은 이런 영문도 모른채 『신문이 왜 들러리인 이철희를 주범으로 만드느냐』고 기자들을 힐난하기도 했다.
법무부는 28일 정 장관의 국회보고 자료 배부를 둘러싸고 또 한차례 보도진과 신경전.
평소 장관의 국회보고 자료는 보고가 시작됨과 동시에 기자들에게 배부됐으나 이날은 웬일인지 보고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배부를 하지 않았던 것.
이날 본회의는 하오 2시 개회 예정이었으나 일부 의원들이 『장관 보고는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하오 3시로 늦어진데다 혹시 보고 도중에 중단되는 사태가 있을까봐 법무부 관계자들은 보고 자료를 들고 전전긍긍.
결국 정 장관이 보고를 시작한 뒤 1시간이 지난 하오 4시50분쯤에야 자료가 배포됐는데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미리 보고 자료가 새 나갈 경우 의원들에게 방어하는 쪽의 허점을 노출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풀이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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