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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미 3년 본대로 들은 대로…김재혁 전 특파원 (3)|벌금과 준법 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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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캘리포니아 고속도로 순찰대 (CMIPS) 대원도 비번일 때 차를 몰고 나갔다가 주차 위반 딱지를 받는다. 법 앞에서는 대통령의 아들도 예외가 없다. 미국에서는 법 앞에 모든 시민이 평등한 대접을 받고 또 미국 사람들의 질서 의식과 준법 정신이 비교적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법을 어겼다가는 당장 벌금을 물어야 하는 등 불이익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법을 지키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보통 미국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규제하는 것은 바로 벌금으로 내는 달러라 할 수 있다. 벌금 액수가 많을수록 사람들은 엄숙할 이만큼 법을 지키고, 벌금에 걸리지 않으면 아무 짓이나 해댄다.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다가 발견되면 ××달러의 벌금에 처함』이라는 경고판이 나붙은 곳에는 그야말로 쓰레기 한점 없이 깨끗하다.
그러나 뉴욕 시내는 쓰레기더미다. 담배꽁초를 버려도 그만이고, 가래침을 뱉어도 누가 뭐라지 않는다. 벌금 경고판이 나붙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사 담배꽁초를 버려서는 안되고 침을 뱉어서는 안된다는 법이 있다고 해도 뉴욕처럼 인구 조밀 도시에서는 벌금 수입보다 단속원의 비용이 더 들지도 모를 일이다.
「에드·카치」 뉴욕 시장은 재작년부터 시내 중심가의 불법 주차를 근절시키기 위해 주차 위반 딱지 벌금을 2배로 올렸다. 주차 위반 차량이 격감했음은 물론이다. 미국인들에게 『벌금을 낼 테냐? 법을 지킬 테냐』고 들이대면 당연히 후자를 택한다.
미국에서는 법으로 분명하게 『××하지 말 것』이라고 못박은 경우 외에는 무슨 짓이든 할 수가 있고, 또 당연히 허용된다.
귀걸이·코걸이식의 법률해석이나 적용은 있을 수 없다. 예컨대 카섹스를 했다고 연행되는 경우는 없다. 금지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경범죄 처벌법에는 『…혐오감을 주게한 자』도 처벌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혐오감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의 혐오감이 되는지, 또 혐오감을 누구가 판정하는지 모호하다. 미국에서라면 상상도 못할 법이다.
미국 사람은 차량 통행이 거의 끊긴 심야의 네거리에서도 빨간 불이 켜지면 신호가 바뀔 때까지 기다린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벌금 딱지를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술주정뱅이도 법을 지키는 것을 보면 신통스럽기조차 하다.
뉴욕 시내 극장가 브로드웨이에서 서쪽으로 2블록 떨어진 8번가는 바로 술주정뱅이들의 배회처다.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한푼 적선을 청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멋모르고 들어선 관광객들이 『선생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이 동네 술주정뱅이는 겉보기와는 달리 주먹을 휘두르거나 강도 짓 따위는 저지르지 않는다. 한푼 얻어서 술 한잔 사 마시면 그만이기 때문에 굳이 사고를 저지를 이유가 없다. 오히려 5번가의 뉴욕 시립 도서관 뒤쪽 같은 마약 중독자 배회처에서는 이따금 강력 사건이 터진다.
8번가의 알콜 중독자들은 길에서 술을 마실 때 반드시 술병이나 맥주 깡통을 종이 봉투에 싸서 마신다. 뉴욕시의 조례에 따르면 건물 밖에서는 알콜이 표시된 음료를 마실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것믈 달리 말하면 알콜 표시가 가려진 상태에서는 마셔도 괜찮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래서 알콜 중독자들은 가게에서 싸준 누런 종이 봉투 속에 술병이나 맥주 깡통을 넣어서 마시는 것이다. 맨 술병을 나팔불다가는 당장 순찰 경관에게 적발되어 벌금 딱지를 받겠지만, 종이 봉투째로 마시는 사람은 적발하려고도 않고, 설령 적발한다고 해도 『콜라 한잔 마셨다』면 으쓱 어깻짓을 하고 물러난다.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이긴 해도 법의 해석이나 적용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자유를 최대로 허용하려는 것이 미국법의 정신이다. 물론 법의 구멍을 악용하여 실리를 취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이와 비슷한 일은 공원에서도 흔히 벌어진다. 공원에 따라서는 알콜이 표시된 음료를 마시지 못하도록 정해놓은 곳이 있다. 순찰 경관은 간이 식탁에 차려진 술병이나 맥주 깡통을 발견하면 1차로 경고를 한다. 이 공원 안에서는 알콜 표시 음료를 마실 수 없다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술병을 치워달라고 부탁하고 사라진다.
2차로 술병이 적발되면 벌금 딱지를 떼게 마련이다. 그러나 술병을 종이봉투로 가려서 마신다면 경찰관의 코앞에서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유엔 본부 건물이 있는 주위의 대로에는 합법적인 불법 주차 차량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유엔에 등록된 각국 외교관들이 소화전 앞이건 남의 가게 앞이건 가리지 않고 주차하고 있다. 순찰 경관은 어김없이 45달러짜리 주차 위반 스티커를 뗀다. 외교관들은 면책 특권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벌금을 내지 않아도 그만이다. 경찰도 그걸 충분히 알고 있지만 예외를 만들지 않기 위해 끈질기게 딱지를 발부하고 통계를 작성한다. l년에 한번 정도 신문에 슬쩍 흘려주어 공개적으로 망신을 시킨다.
소련과 북괴 등 공산권 외교관 차량이 가장 법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이 구간부터 레이다로 속도를 측정한다』는 경고판이 나붙은 곳이 있다. 최고 속도 55마일 (88㎞)을 10마일 (16㎞) 이상 과속하다가 레이다에 잡히면 위반사실이 기록에 오르고 주법에 따른 최고액의 벌금을 물어야한다.
게다가 다음 번의 자동차 보험료가 껑충 뛰어 오른다. 벌금만으로도 부족하다는 얘기다.
벌금 제도의 활용은 다분히 자본주의적인 냄새가 나긴 하지만 달러와 법을 연계시킨 것이 바로 미국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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