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고 떠들고 메어터지는 유원지 묵혔던 일제을 배설하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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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한사코 저를 즐겁게 해 달래서 부부가 아이 하나씩을 맡아 집을 나셨다.
돈 만원이면 보통으로는 즐기고 올 수 있는, 어떤 곳으로 가자고 우리는 의견을 모았고 아이도 좋아했다. 나는 남편 몰래 2만원을 따로 넣어두었다.
광화문에서 내려 김밥과 통닭을 사서 예산의 반 넘어를 섰다.
관광버스 표를 사자니, 그게 평소보다 값이 비싸다는 거였다. 행락철엔 그렇다는 얘기였다. 우리는 입이 조금씩 나왔고 나는 몰래 넣은 2만원을 털어 보였다.
관광버스는 10분마다 떠난다더니 그게 그쪽 말과는 달라 우리는 30분을 기다렸다가 버스에 올랐는데 자리가 맨 뒤였다.
우리의 삐 문 입이 조금 더 나왔다.
더군다나 버스 안엔 음료수 병이나 먹는거 쌌던 종이 따위가 아무렇게나 있어서, 내 기분은 마치 김이 오르는 배설물 곁에 있는 그런거 였다.
나는 1년에 한두번 관광버스를 타는데, 그럴 때마다 행락에 나선 사람들의 태도가 꼭 일상의 배설에 자기자신을 맡겨 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우리들 나날의 삶에는 배설해야 할 것이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알맞게 버려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버릴 것이 쌓여 있다가 겨우 어쩌다 떠나보는 행락 길에, 미친듯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다.
한여름 바다에 가서나 산에서나, 아이들 좋자고 하는 유원지에서조차 이 비정상인, 그래서 사뭇 위협적인 일상의 배설을 몸서리치게 경험하고 느끼게 된다.
쉬지 않고 먹고 마시는 아이와 어른, 쉬지 않고 떠들고 웃고 욕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남자 여자, 이 때다 싶어 마구잡이로 올려 부르는 행락지의 여러가지 값들 따위가 묵혀서 병이 된 배설의 변상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 날 우리 부부는, 마침내 삐 문 입으로, 사람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 돈을 상대하는 게 분명한 관광회사와 공중도덕 모르는 사람들을 한참이나 욕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먹은 음료수 병을 버스 안에 아무렇게나 비리고, 아이 입 언저리 닦아 준 휴지도 그렇게, 공중도덕 모르는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태연하게 버렸다.
앞에 앉은 중산층의 고급시민 한사람이 질겅대던 껌을 고개만 숙여 버스 구석에 버렸다.
나는 낯을 찡그렸다.
뻔뻔스런 행동에는 여자가 남자 따라갈 수 없다고 속으로 마냥 경멸하면서 였다.
유원지는 그곳 진입로에서 이미 차가 밀려 우리는 광화문에서 그곳까지 가는 시간만큼이나 걸려서야 유원지 바로 그곳까지 닿을 수가 있었다.
그곳은 차와 사람과 소리로 터질 지경이었다.
그 속에 들어갔다간 무슨 변을 당할지 불안해서, 그냥 온 길로 줄행랑이나 치고 싶은 심정이 간절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리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갈 것을 걱정했다.
수많은 자가용이 마치 엉겨붙은 것처럼 밀려서 아우성인게, 내 없는 형편을 자꾸만 근지럽게 자극해서 빌빌빌 웃으며 자가용들을 흉보았다.
나는 남편을 보채서, 먼지피해 통닭과 김밥 먹어치울데로 빨리 가자고 했고 겁 많은 아이조차 질려서 무슨 기차, 무슨 비행기, 그리고 호랑이 사자는 도저히 볼 수 없다는 어미의 속셈 있는 으름장에 고분고분 했다.
우린 겨우 사람들 틈에 끼여 음식을 먹고 아이만 아무데나 쉬야시키고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갈 데는 지정 좌석이 없다니 냄새 안 나는 좋은 자리를 맡아야 한다고 해서였다.
우리는 뜻한 대로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저만큼에 아직 보글보글 바글바글 뒤엉킨 사람들이 보였다.
그러나 나는 이내 실속 차린 척은 했으되 결국 가장 어리석은 꼴이된 우리 처지를 깨달아 버렸고 한없이 서글퍼졌다.
요사이 우리들의 행락이 배설이라면 우린 그 배설조차 제대로 해버리지 못하는 완전히 주눅들어 기축은 환자이기 때문에 서다.
집에 와 신발을 벗는데 뭐가 찐드기 묻어 났다.
발목에 껌이 붙어 스타킹과 운동화까지 물귀신 모양으로 잡아당기는 거였다. 【이경자】

<약력> ▲1948년 강원도 양양 태생 ▲서라벌예대문예창작과 졸업 ▲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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