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학의 특징은 지사적 경향-역사학대회서 이기백·문두기 교수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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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우리나라 역사학계 최대의 연중행사인 전국역사학대회 (대회장 전상련)가 28, 29일 양일간 성신여대에서 열렸다. 올해로 25회를 맞는 이번 대회는 한국과학사학회(주관)·역사학회·한국사학회·한국사연구회·동양사학회·한국서양사학회·역사교육연구회·경제사학회·한국미술사학회 등 9개 학회가 공동 주최했다. 첫날인 28일엔 공동주재 발표 및 토론이 있었고29일에는 한국사부·동양사부 등 7개 부별로 모두 41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올해의 공동주제는 『역사학의 방법』. 그 중에서도 특히 역사학에서의 객관성의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양병우 교수(서울대)의 『역사의 객관성』과 송상용 교수(전 성균관대)의 『쿤의 도전과 객관성의 우기』는 주로 이론적 측면에서, 신민족주의사관을 중심으로한 이기백 교수(서강대)의 『한국사연구의 방법론적 반성』과 중공에서의 근대사 연구를 중심으로 한 민두기 교수(서울대)의 『중공에 있어서의 역사해석의 문제』는 실제적 측면에서 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기백 교수는 해방 초기에 하나의 통합적인 사관으로서 대두했던 신민족주의사관을 중심으로 한국사연구의 방법론적 반성을 시도했다. 손진태가 주장한 신민족주의사관은 현대한국사관의 고민을 가장 잘 나타내 주고 있다고 그는 보았다.
손진태는 그의 『조선민족사개론』자서에서 신민족주의는 민족 전체의 균등한 행복 위에서 민족의 단합을 이룩하는 것이라고 쓰고 있다.
이 교수는 신민족주의사관에서 지극히 감동적인 점은 그것이 자기의 입장에서 사실을 비판하는 강한 태도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의 객관적 인식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점이라고 지적하고, 이는 이를테면 최근의 고대사논쟁과 관련, 거듭 되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비판의 기준을 현재의 민족적·현실적 이상에 둔 이사관은 그 사실비판이 대단히 도덕적이란 점이 또한 특징. 이 교수는 이 점에서 신민족주의사관은 역사를 발전적으로 보려는 경합이 대단히 약하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현재의 민족적 당위로서 내세운 절대적 기준에 의해 사실을 긍정과 부정, 선과 악으로 구분해내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러한 반복사관은 오늘의 역사학이 사실의 절대적 가치보다 역사적 의의를 추구하는 학문이란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이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현대 한국사학의 특징의 하나는 한말이래 우리민족이 처해온 역사적 현실과 밀접히 관련하여 지사적 학문의 성격을 띠는 점이라면서 그 결과 한국사학은 도덕적 반복사관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고 우려를 표하고 이는 한국사의 발전을 체계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한편 중공에서의 근대사연구를 중심으로 역사해석의 문제를 검토한 민두기 교수는 현재 중공의 역사학자들이 당면한 최대의 과제는 역사학이 정치의 예속성을 벗어나 독자적 영역을 갖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날 역사학이 정치, 즉 무산계급혁명에 봉사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으나 이제 문혁과 사인방의 극좌노선통치를 겪고 나서 이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왔다는 것.
민 교수는 1958년이래 전개된 사학혁명, 즉 ▲박고후금(근대사·현대사연구에 치중하고 고대사 연구는 이 해석의 보조로서 함) ▲이론대사(마르크스-레닌주의나 모택동 사상을 역사연구의 지도원리로 삼아 그에 맞춤) ▲변간변학(현실의 투쟁에 참가하면서 한편으로 배움)의 취지에 따라 역사를 해석하다보니 지나치게 단순해지고 앞뒤의 연결이 안되는 경우가 생겼다고 설명하고, 이에 전백찬·오식 같은 사람이 이른바 역사주의를 제창했다고 지적했다.
농민전쟁이나 역사인물을 해석· 평가함에 있어 당시의 역사조건을 기준으로 해야지 오늘의 상황을 기준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으로서, 역사해석의 일관성과 타당성을 문제 삼으려한 것.
그러나 문화혁명은 이같은 역사주의의 존재를 용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바로 그것에 대한 공격으로부터 문혁은 시작됐다. 이에 대체된 것은 극단적인 단순화·절대화를 통해 현실정치에 이용원 임표·사인방의 영사사학이었다.
민 교수는 현재 중공의 학자들이 취하는 방법은 실사구(이는 현 집권세력이 모 사상을 격하하기 위해 쓰는 말) 논종사출(마르크스주의이론의 정당성을 사보의 연구에서 얻어내야지 마르크스주의이론의 정당성을 위해 사실을 조합해선 안됨)을 원칙으로한 역사주의라고 지적하면서, 유물사관에 입각한 역사연구에서 사회경제적 연구를 소홀히 했던 점이 중공마르크스주의 사학의 지금까지의 단계였으나 이게 그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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