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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만 요란했던 한미 수교 특집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한미 수교 1백주년을 기념하여 꾸민 KBS 제lTV의 『맥토』와 MBC TV의 『실록 한미 1백년』은 요란했던 선전만큼 실망도 컸다. 이제 그 보기를 들면-.
『실록…』에서 이른바 종주국 문제로 우리측 대표와 「슈펠트」, 중국의 이홍장과의 담판 장면이 극명스럽다.
조선은 중국의 속방이라는 이홍장의 주장에 맞서 「슈펠트」가 『어찌된 것이오, 독립국이오? 속방이오?』라는 다그침에 우리 대표들은 이홍장의 눈치를 살피며 어물어물한다.
한미 수호 통상 조약은 「슈펠트」와 이홍장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우리는 다만 조인만 했을 뿐 처음부터 회의에 참석한 일조차 없는데 무슨 근거에서 그런 비굴스런 표현을 했을까.
조약 체결에서 공사관철수까지 미국은 언제나 정치적으로 중립과 불간섭, 무관심으로 일관했고 우리 정치에 관여한 공사를 소환까지 하였는데 『맥토』에서는 갑신정변에 즈음하여 홍영식이 미국이 일본의 부당한 세력을 막아 줄 것이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그때의 실정과는 동떨어진 드라머의 표현이 아닌가.
『실록…』에서 셔먼호라는 배 한 척이 온 나라를 들끓게 꾸민 상황도 창피스런 인상이었거니와 평양에서는 있지도 않은 천주교도의 박해를 끼워 사실을 왜곡하고 개화 인물로 유명한 박규수까지 완맹한 봉건 관료로 몰아 세운 처사는 옳은 일인가.
갑신정변 때 청군과 큰 싸움을 벌인 것은 친영군에 속했던 우리 군대인데 일군과의 충돌만으로 그린 것도 잘못이거니와 『실록…』에서 인조반정 때의 고사를 빌어다 상여 속에 무기를 숨겨오거나 어전에서 김옥균이 권총으로 내시를 겨누는 장면들도 사극의 본질에는 아랑곳없이 흥미 위주로만 드라머를 꾸민 좋은 보기다. 『맥토』에서 김한봉의 아들이 오끼나와 상륙 전에서 전사하는 장면도, 일본군이 이른바 수제요격 작전을 포기해 미군 4개 사단이 한사람의 피해 없이 쉽게 상륙했던 전사를 모른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극적 효과에만 집착한 나머지 『실록…』에서 수천명의 군중이 횃불을 들고 함성을 지르며 셔먼호를 공격하는 장면도 실상을 무시한 묘사이거니와 3백50명이 전사한 광성진 전투도 포로가 되느니 보다는 자결을 택한 1백여 병사의 장렬한 최후 장면을 그렸어야 다큐멘터리 터치에 어울리는 꾸밈이 된다.
이른바 만인소의 배경을 한미 수호에 원인을 둔 것으로 그린 것이나 『맥토』에서 병인 이전에 김을의 아버지가 개화 사상 때문에 죽음을 당한 것으로 꾸민 것도 억지이며 『실록…』에서 대원군을 48세의 나이답지 않게 늙고 우매한 노인으로 분장시킨 것도 맞지 않고 셔먼호를 찾아간 천주교도들이 양식 대접에 황송해하는 것이나 갑신정변 때 죽첨공사 앞에서 개화파들이 굽신 대는 것, 『맥토』에서 민영익 등이 서 있기만 하는 미국 대통령 앞에서 엎드려 큰절로 예의를 표하는 장면도 치욕감을 느끼기에 앞서 그들이 일찍 미국에 건너가 그 나라 풍습을 익힌 뒤의 사정이고 보면 가당치도 않은 상황 설정이다.
이상의 지적들은 이번 2편의 특집극에서 드러난 사소한 문제들의 보기 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한미 수호 통상 조약을 보는 2편의 특집극의 역사 인식에 있다.
일본과 러시아 세력을 막으려는 우리 쪽의 정치적 목적과는 달리 미국은 통상 관계에만 관심을 쏟았던 사정을 흘리고 이 조약에 엄청난 정치적 의미를 두어 이후의 우리 역사 과정에까지 연결시켜간 드라머의 전개가 큰 잘못이라는 것이다. 신규호 <방송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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