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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위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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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안충영 동반성장위원장 중앙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경제학

우리나라는 1990년대 초까지 경제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달성한 대표적 국가였다(세계은행, 1993). 그러나 97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구조적 저성장과 소득분배의 악화를 경험하고 있다. 2008년 이후 지난 6년간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연평균 2.95%를 기록해 잠재성장률 3% 중반대에도 못 미치고 있다. 장기 저성장에 따라 양산된 청년실업자와 소득양극화는 사회통합에도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확립은 이제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대외여건은 녹록지 않다. 미국은 마침내 양적 완화 정책을 마무리하고 금리인상 기조로 돌아설 채비를 하고 있다. 일본은 초엔저 정책을 다시 강화해 우리 수출경쟁력을 정면에서 위협하고 있다. 중국은 성장률 둔화에 이어 주요 부품과 소재의 대대적 수입 대체로 최근 우리의 대중수출을 크게 감소시키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많은 나라에서 소득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다보스 포럼에서도 지속가능 성장체제 확립을 위해 ‘따뜻한 시장경제’와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을 주문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90년대 중반 0.281을 기록했다. 그러나 1997~98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 우리 경제는 마이너스 6.9% 성장을 기록, 대량실업을 맞았다. 최악의 경제상황에서 지니계수도 0.32로 상승, 소득분배도 악화되었다. 그 뒤 몇 년간 약간의 분배개선이 있었으나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소득분배는 다시 악화되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중산층은 엷어지고 저소득층의 폭은 더욱 늘어나 최상위 소득계층과의 양극화는 깊어지고 있다.

 두 차례 대형 경제위기를 통해 확인된 사실은 저성장이 고실업과 소득분배 양극화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수출과 내수의 쌍끌이 견인이 일어날 때 지속 가능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 만약 수출에 크게 충격이 오면 내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올 들어 고개를 들던 내수도 세월호 대참사 이후 다시 가라앉았다. 경제가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분위기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과단성 있는 재정·통화 정책을 표방하는 ‘최경환 노믹스’는 그 타이밍에서 적절한 대응이다. 다만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해 10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와 820조원에 이르는 공공부문 부채도 관리하는 구조개혁의 숙제도 함께 풀어 가야 한다.

 우리가 당면한 경제의 무기력증에서 탈출하는 데 거시정책 이외에 기업생태계에도 일대혁신이 필요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대기업이 국내에서 조달하는 소재와 부품의 품질이 개선되도록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중소기업이 성장사다리를 타고 중견기업이 되어야 한다. 사회적 안전망의 미비 때문에 골목상권과 소상공인들이 삶의 터전으로서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대기업에서 1차 협력업체로 납품대금이 적기에 지불되는 관행은 상당히 개선되었다. 그러나 2차와 3차 협력업체까지 온기는 미흡하다. 이들 협력업체까지 자금순환이 제값으로 제때에 이루어지면 내수진작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이를 위해 1차 협력업체로 납품대금이 지불되면 2, 3차 협력기업에도 자금 흐름이 바로 돌아가는 ‘상생결제’가 강화되어야 한다. 머지않아 한·중 FTA가 타결된다. 13억 중국인의 다양한 소비욕구에 맞추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진출로 줄어 들고 있는 대중국 수출에 대응해야 한다. 식품과학 차원에서 중소기업이 지방특산 유기 농산물을 개발하고 대기업이 현지마케팅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지역창조혁신센터의 성공도 벤처창업을 촉진하고 기존 지역중소기업의 혁신능력 여부에 달려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대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대기성 자금은 757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벤처캐피털 회사는 상대적으로 다른 기구보다 신뢰할 수 있는 기술 평가능력을 지니고 있다. 여유자금이 벤처 자금으로 유입되고, 벤처캐피털 회사가 기술평가능력을 더욱 함양하면서 창업금융을 과감히 하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경제활동은 사회적 심리현상이다. 소득의 증가에서 얼마를 소비할 것인가의 소비성향도 심리현상이다. 위험을 안고 대규모 투자를 매듭짓는 기업가의 결심도 결국 직관적 심리에서 출발한다. 심리적으로 예측 가능한 투자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은 기업가의 투자의욕, 국회의 적기 입법조치, 범정부적 행정역량의 삼위일체에서 가능하다.

안충영 동반성장위원장, 중앙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