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로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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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노인은 노후를 안락하게 지내야할 분들이다』-. 바로 얼마전 선포된 경로헌장은 이처럼 노인보호를 선언적으로 규정했다. 이 헌장은 또 『노인은 가정에서 자손의 극진한 봉양을 받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노인들이 살아가기에 점차 더 각박한 세상이 되고 있나보다.
양로원에 들어가라는 딸의 편지에 앞길이 아득하다고 느낀 7순의 홀어머니가 최근 극약을 먹고 자살한 세태가 이 각박함을 돋보이게 한다.
6년 전 미국에 이민간 딸은 그곳의 양로원 시설을 보고 이만 하면 노인들이 살기에 충분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또 미국에선 노후를 자손에게 의탁하지 않고 양로원 신세를 지는 것이 중산층 가정에선 흔히 있는 일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국 가정의 붕괴는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남편이 일하고 아내가 가정을 지키며, 두명의 아이를 기르는 것이 전형적인 핵가족이라고 생각할 때 과연 미국인의 몇%가 이러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을까. 그것은 전 인구의 7%밖에 안된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혼자 살거나, 동거, 아이 없는 부부, 편부나 편모가정, 집합가족(이혼한 부모가 각기 자녀들을 데리고 혼인한 것)의 형태로 살아간다.
따라서 미국에선 『가정의 붕괴를 막자』고 말할 때 그것은 핵가족제도나마 유지하자는 뜻이지 노인을 모시고 살자는 얘기는 천만부당한 예기가 된다.
미국에 이민간 한국인들은 이 같은 미국 사회에 적응한 나머지 노후의 독립생활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지 모르나 아직 우리 실정은 구미의 발달된 노인복지시설을 쫓아갈 수가 없다.
80년 현재 전국의 양로원 숫자는 48개소. 여기에 수용된 노인이래야 3천 1백여명에 불과하다.
작년에 양로원 노인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가 실시됐다.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돈을 벌지 못한 것」이 57·9%, 「자녀가 없는 것」이 29·6%였다. 모두 돈이나 자녀만 있다면 양로원 생활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가정 귀속감을 나타내 준다.
여기서 한번 더 생각할 것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양로원을 짓고 노인을 여기로 내 모는 것이 과연 노인이나 자녀, 가정, 사회를 위해 모두 행복한 일이냐 하는 것이다.
산업사회가 진척될수록 가정의 붕괴현상도 빨라질 것이 두렵기만 하다. 자의건 타의건 사 고무친한 노인도 늘어날 전망이다.
과연 한국 사회는 어느 길로 가야할까, 두고두고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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