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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이겨낸 감동의 화음 두 번 운 객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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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 11일 ‘장애인 음악가 4인 콘서트’를 연 피아니스트 이희아, 테너 최승원, 대중가수 박마루, 클라리네티스트 이상재씨(왼쪽부터)가 음악회 중간에 관객과 대화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우리는 장애인입니다. 손가락이 네 개뿐이고 다리를 절며 눈은 보이지 않지만 온몸으로 곡을 연주합니다."

11일 경기도 용인 풍덕고등학교에서 열린 '장애인 음악가 4인 감동 콘서트, 희망으로' 행사.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테너 최승원씨가 지팡이를 짚고 무대에 올라 행사의 의미를 설명했다.

최씨는 "네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웬만한 남자의 팔뚝만큼 얇은 내 다리로 서서 노래할 수 있는 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가곡 '내 마음의 강물'을 내 고백이라 생각하고 들어달라"며 노래를 시작했다.

"비바람 모진 된서리 지나간 자욱마다 맘 아파도 알알이 맺힌 고운 진주알 아롱아롱 더욱 빛나네."

최씨가 이 노랫말을 풍부한 성량으로 전하자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화답했다.

노래를 마친 최씨는 "음악은 내가 살아가는 또 다른 이유"라며 "신체적 장애보다 더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 음악만큼 좋은 게 없었다"고 덧붙였다.

성악가에게 불편한 몸은 만만치 않은 약점이었지만 최씨는 오로지 노력만으로 미국 맨해튼 음대 대학원을 수석졸업했다. 1993년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콩쿠르에서 경쟁자 5만 명을 물리치고 우승, 주목받는 음악가가 됐다. 최씨의 뒤를 이어 피아니스트 이희아씨가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들려줬다. 이씨는 선천성 사지 기형으로 다리가 무릎 아래로는 없고 손가락은 네 개뿐이지만 독주회를 열 번 이상 여는 등 활발한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씨가 즉흥환상곡 연주를 마치자 객석에 있던 권예현(9)양은 "내가 열 손가락으로 치는 것보다 언니 연주가 훨씬 빠르다"며 힘껏 손뼉을 쳤다.

이씨의 어머니 우갑선(50)씨는 "희아는 즉흥환상곡을 지난 5년 동안 매일 10시간씩 연습했다"며 "손가락이 아프고 페달 밟는 무릎에 상처도 났지만 꾸준히 연습한 결과 이 정도로 빠르게 연주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이씨는 "어려서 '꽃게 손'이나 '귀신'이라는 놀림을 많이 받았지만 그럴 때마다 놀리는 아이들과 친구가 됐다"며 "놀림 받던 손으로 무대에서 연주하면서 사람들과 음악을 나눌 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어 빛도 느낄 수 없는 중증 시각장애인인 클라리넷 연주자 이상재씨와 목발을 짚고 서서 노래하는 가수 박마루씨가 거슈윈의 '서머타임', 조용필의 '친구여' 등의 곡을 들려줬다.

음악회를 지켜본 풍덕고 1학년 유지연양은 "출연자 개개인의 사연도 감동적이었지만 음악 수준도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은 풍덕고 대강당을 가득 메운 1000여 명의 학생과 400여 명의 지역주민이 다 같이 일어나 '사랑으로'를 부르며 막을 내렸다. 많은 관객의 눈엔 눈물이 아롱거렸다.

장애인 음악가 4인의 콘서트는 교육부 주관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진행된다.

김호정 기자, 김봄내 인턴기자 <wisehj@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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